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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만 위험한 외출, 창업 창업 후의 재취업 복귀에 대하여 Q: 생각해보면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땐 누구나 나를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곧 잊혀지더군요. 성공을 하지 못한 창업의 대가는 무서웠습니다. 이젠 재취업조차 쉽지 않군요. 한때 나는 창업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산 적이 있었다. 자유롭고 싶었고, 막연하지만 오랜 시간 내 뜻대로 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창업밖에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같이 어려운 시대, 특히나 40대 후반만 되도 다른 일자리로의 전직이 어려워지는 시대에서 창업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성공만 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 외에도 그것이 성공적으로만 돌아가면 대개의 경우 직장에서 받던 수입의 몇 배 수준까지는 올라가는 현실을 보며, 또 누구의 간섭.. 2009. 12. 24.
여의도 여의도..... 둘째 녀석 얼굴 본 지도 한참 됐다 늘 곤한 표정의 자는 얼굴만 보다보니 어쩌다 마주쳐도 생뚱한 표정의 두 살이다 출근 때는 그래도 사람같던 얼굴이 퇴근 때면 상가집에서 밤을 샌 이들과 다를 바 없다 점심 무렵 공원 옆 양지에 앉아 햇빛쬐는 이들을 보면 와이셔츠 깃의 눈부심도 왠지 마음이 아릿하다 그 옛날 사람들은 낮이 되면 거리로 나갔다는데 이곳 사람들은 밤이 되어야 거리로 나온다 낮을 팔아 밥을 사는 것은 이제 아주 오래된 습관이 되버렸다 2009. 12. 23.
사회적 취약계층의 취업 이야기 결혼이주여성, 탈북자 취업에 대해 얼마 전 중국 의대 출신의 조선족 김홍매(37)씨의 한국 적응기가 한 일간지를 통해 보도된 것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중국 연변에서 가정의학을 전공할 정도의 수재였지만(중국에서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쟁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라 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막일에 가까운 일을 하며 전전해 왔었다. 흔히 말하는 '결혼이주여성'의 케이스다. 개인적으로도 몇몇 조선족 동포와 귀화한 중국인 등을 상담해 본 적이 있고, 탈북자 혹은 새터민이라 불리는 사람들과의 상담 경험 역시 있다. 이들과의 상담에서 느낀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원천적 문제'라는 벽이었다. 사실 이들은 능력이 있어도 한국사회에서 좋은 직업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기본적으로 언어적 문제가.. 2009. 12. 9.
40대 두 남자를 떠나 보내며... 불과 며칠 사이에 내가 알던 두 남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도 모르고 그저 ‘나’라는 사람과의 작은 연결고리만 공통점으로 가진 보통의 대한민국 40대 가장이었더랬습니다. 그런 그들은 이제 지금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저라는 매개체 외에도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이란 것이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과 죽음을 갈라놓은 일에 일조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은 저의 친구였습니다. 1년 전 쯤 실직을 했다 했습니다. 아쉽게도 명색이 커리어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진 친구라는 작자는 그런 내용도 몰랐었습니다. 죽고 난 후에야, 그것도 자살이라는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한때 같이 웃고 함께 공부했던 친구가 떠난 후에야 그런 사실을 알았지요. 아마도 단순한 실직의 문제만은.. 2009.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