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著
책을 말하다>
아마도 이 책의 핵심메시지를 관통하는 문장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 의사 출신으로 로고테라피(의미치료)라는 개념을 개발한 그는 자신의 이론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 출신으로 살아남은 이야기로 더 유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수용소의 제한되고 피폐한 삶을 통해 어려운 환경에 직면한 인간이 어떻게 ‘의미’를 찾고, 생존을 위한 ‘각자의 선택’을 하게 되는지 설명하는 이 책은 실화에 근거한 만큼 더 강력한 설득력을 보인다.
다만, 인간의 복잡한 심리 이면을 과연 로고테라피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토록 다양한 학파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이론이 생기는 자체가 인간의 복잡한 이면을 모두 관통하는 설명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그런 측면에서 인간심리이해와 치료의 한 목록으로 기능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나저나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일까?
마음에 남다>
- 정신의학에 보면 소위 ‘집행유예 망상’delusion of reprieve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실낱같은 희망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p.36)
-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p.47~48)
-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 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가스실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p.49)
- 인간이 더 이상 어느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정서와 감정의 둔화를 의미하는 무감각은 수용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의 두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징후이다. 수감자들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구타에 대해서도 무감각해진다. 이런 무감각을 수단으로 사람들은 곧 자기 주위에 꼭 필요한 보호막을 쌓기에 이른다(p.57)
-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수감자라 할지라도 분노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분노는 육체적인 학대와 고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으면서 느끼는 모멸감에서 나오는 것이다(p.60)
- 만약 강제수용소에 있는 사람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이에 대항해서 싸우지 않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의 인간이라는 생각, 마음을 지니고 내적인 자유와 인격적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는 생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거대한 군중의 한 부분에 불과한 존재로 생각한다, 존재가 짐승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p.96)
-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p.120)
-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p.121)
-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p.122)
-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중략)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중략)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를 제공한다(p.122~123)
-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실직한 광부를 대상으로 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그들이 아주 기이한 형태의 변형된 시간감각-내면의 시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다(p.128)
-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p.129)
-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중략)
수용소의 어려운 상황을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p.130)
- 수용소에서 수감자가 입은 정신병리적 상처를 정신요법이나 정신위생학적 방법을 이용해 치료하려면 그가 기대할 수 있는 미래의 목표를 정해줌으로써 내면의 힘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수감자들 중에 몇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그런 목표를 찾아내기도 한다(p.131)
-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p.138)
- 삶으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이들에게는 인생이 그들로부터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p.141)
- 갇혀 있다가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이인증離人症’이라 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p.154)
-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중략)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된다(p.167)
-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내가 로고테라피를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이나, 아드리안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불리는 권력에의 추구와 대비시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p.168)
- 몇 년 전에 프랑스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89퍼센트의 사람들이 인간에게는 살아야 할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왔다. 그 중 61퍼센트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기꺼이 그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어떤 것’과 ‘어떤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p.169)
- 누제닉 노이로제(심인성 노이로제의 로코테라피적 표현)는 욕구와 본능의 갈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 원인 중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p.171)
-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p.176)
- 실존적 공허는 대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 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중략)
‘일요병’을 한번 예로 들어보자. 일요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한 주일을 보내고 내면의 공허감이 밀려올 때,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이 겪는 일종의 우울증이다. 자살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실존적 공허 때문에 일어난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성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연금생활자나 나이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p.178~179)
-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중략)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선이나 진리,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3)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p.183~184)
- "오늘날 정신건강 철학은 인간은 반드시 행복해야 하며, 불행은 부적응의 징후라는 생각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가치체계가 불행하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더 불행해지면서 피할 수 없는 불행의 짐이 더욱 가중되는 상황을 만들어 온 것이다.“(전 조지아 대학 심리학과 교수 이디쓰 와이스코프 조웰슨의 말 중에서, p.188)
- 염세주의자는 매일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얇아지는 것을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의 뒷장에다 중요한 일과를 적어 놓은 다음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 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 있는 그 풍부한 내용들, 그 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가지고 즐겁게 반추해 볼 수 있다(p.198~199)
- 로고테라피에서 활용되는 ‘역설의도 paradoxical intention' 라는 기법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다. 즉 마음 속의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일을 생기게 하고, 지나친 주의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중략)
땀 흘리는 것에 대해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한 젊은 의사, 땀을 많이 흘릴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예기불안이 정말로 땀을 많이 흘리게 만든다는 상황, 이 순환고리를 끊어버리기 위해 환자에게 땀을 많이 흘리게 될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일부러 사람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땀을 많이 흘릴 수 있는지 보여 주겠다는 생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충고,(중략)
공포증으로 4년 동안 고생하던 그는 단 일주일 만에 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p.202)
- 역설의도의 유사사례, 글씨를 악필로 쓰는 사람에게 깨끗하게 쓰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아무렇게나 휘갈겨 써보라고 한 경우, 48시간 만에 손떨림 증세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음. 말더듬는 증세도 유사한 사례 있음(p.204~205)
- 역설의도는 수면장애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불면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결국 어떻게든 잠을 자야겠다는 과도한 의욕을 갖게 하는데, 이것이 반대로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환자에게 잠을 자려고 애쓰지 말고 반대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해보라고 권했다.(중략)
역설의도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예기불안 때문에 생기는 강박충동 상태와 공포증을 치료할 때에는 이 기법이 매우 유용하다. 물론 이것은 단기적인 치료법이다(p.206)
- 정신분석은 모든 문제를 성욕의 차원에서만 해석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나는 이 비판이 타당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정신분석에는 이보다 훨씬 잘못되고 위험천만한 가정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범결정론이다. 범결정론은 어떤 조건이든지 그 조건에 대해 자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인간관을 의미한다(p.210~211)
-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중략)
‘과잉의도 hyper-intention'는(행복에 대한 억지과잉추구를 포함해) 불감증이든 발기부전이든 간에 성적인 문제로 인한 신경질환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자신을 상대방에게 내맡김으로써 자기 자신을 잊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직접적으로 오르가즘, 즉 성적인 쾌락을 과도하게 추구하면 할수록 성적인 쾌락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더 참담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p.221~222)
- 일자리를 잃게 된 것을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하고,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을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과 동일시한다.(실업으로 인한 신경질환으로 고생하는 젊은 환자들의 특별한 우울증에 관한 연구에서, p.224)
- 자살기도가 미수에 그친 사람들이 수없이 하는 얘기가 자살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한다(p.226)
- 인간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샬롯 뵐러가 말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사람들의 삶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뿐이다.”(p.229)
-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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