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著
책을 말하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이름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로 따지면 통상 10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만한 네임밸류를 가진 작가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철학을 전공한, 통찰력과 함께 독특한 이야기 전개 관점을 구사하는 작가라는 정도. 읽어본 책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 전부다. 이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한번 시도를 했다가 실패한 책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며 ‘아! 이렇게도 글을 풀어갈 수가 있구나’라며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너무 ‘현학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깊게 파고들어간 철학적 고찰과 수시로 보이는 과도한 문장의 화려함이 오히려 집중을 방해했었다.
2년여쯤이 지난 탓일까? 이번에 다시 읽은 책은 훨씬 읽을 만했다. 내가 변한 건지,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좀 더 ‘나와는 다른’ 것을 수용할 만한 여유가 만들어진 탓일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첫 책에서의 느낌은 그대로 묻어난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진부한 이야기를 짧은 단락과 사랑의 진행과정을 철학적, 인문학적 소양을 기반으로 해 재치 있게 풀어낸다. 마치 재담꾼의 화려한 수다 같지만 곳곳에서는 또 선명한 통찰이 번뜩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어떤 경계와 영역에서 인간과는 다른 관점으로 인간을 관찰한다고 말한 것을 들었는데, 보통은 어떤 대상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쫓아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함께 하는 탐험이고 여행처럼,뻔한 스토리를 몰입하게끔 만드는 매력이 있다. 거기다 무엇보다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점은 참 부러운 재능이다.
글쓰기에 대한 것은 그렇다고 하고, 나머지를 보면 이론의 여지는 좀 있어 보인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치열하고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인생의 한 영역에서 ‘사랑’이라는 제 각각의 역사를 만든다.
하지만 그들이 만드는 역사는 그들이 살아온 궤적만큼이나 다양하고 다르다. 서양식(?)이라 불러야 할지, 아니면 요즘식(?)이라 불러야 할지 헷갈리지만 이 사랑은 일견 부럽고 일견 공허하다. 사랑하면 충실하지만 그만큼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따라가는 이 사랑의 행태들은 그래서 늘 언젠가는 자신의 단단한 자기애와 맞물리며 더 이상 나가지를 못하는 느낌이다.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결혼과는 완전히 다른 문법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결혼 없는 사랑의 숱한 반복과 이별은 인간에게 일어나는 단순한 화학적 호르몬 중독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 걸까?
조금만 책을 읽으며 주인공들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부터 책의 결말은 예측 가능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든 내 진짜 의문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도대체 사랑에 어떤 진행과 결말을 기대하는 걸까’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혹시 내가 작가였다면 다른 결말을 만들 수 있었을까?
마음에 남다>
- 침묵은 저주스러운 고발장이었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p.46)
- 완벽함에는 어떤 압제 같은 것이 있다. 심지어 어떤 피로 같은 것이 있다. 보는 사람에게 창조적 역할을 거부하고, 전혀 모호함이 없는 진술이 가지는 독단성으로 밀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흔들리기 때문에 측정이 불가능하다(p.117~118)
- 비록 내 사랑에 희생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다. 나는 순교를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의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내 경향에 완벽하게 들어맞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p.239)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지음 (0) | 2017.03.01 |
---|---|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0) | 2017.02.15 |
미생/윤태호 著 (0) | 2016.11.30 |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著 (0) | 2016.07.01 |
그림자/ 이부영 著 (0) | 2016.03.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