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未生)/ 윤태호 著
책을 말하다>
미생(未生)은 이미 만화계의 전설이 된 작품이다. 직장인의 애환을 담았고, 거기에 비정규직이라는 시대적 이슈가 함께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을 빛나게 하는 건 탄탄한 스토리다. 작가의 힘과 땀이 느껴진다.
만화는 책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접근방식이 다른 것 같다. 스토리를 통해 재미를 느낀다. 그 속에서 각자가 자신들만의 어떤 것을 만화책을 통해 얻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더 해석의 폭이 넓다.
바둑은 여러모로 인생과 닮아 있다.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납득이 가는 바둑을 ‘한 판의 바둑’이라고 한다. 인생 역시 ‘한 판의 바둑’과 같다. 단지 인생이란 바둑은 ‘이기고 지는’ 의미가 선명치 않다. 이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실하게 두는 것이 중요하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인 이상 후회는 남지만,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짓을 하는 것은 누구나 막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둑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모두 ‘미생(未生)’이다. 생각해보면 ‘완생(完生)’인 바둑은 그만큼 흥미가 떨어진다. 미생이기에 더 아슬아슬하고 애절하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나를 되돌아보고, 함께 응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야기를 읽어가며 몇몇 구절들이 와 닿았다. 그래서 옮겨봤다. 책 속에서 만큼의 감동은 없을지라도 한번쯤 음미하고 싶은 내용들이어서....
마음에 남다>
-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다(p.72~73)
- “바둑에 그냥이란 건 없다. 어떤 수를 두고자 할 때는 그 수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나 계획이 있어야 해. 그걸 ‘의도’라고 하지.
또, 내가 무얼 하려고 할 때는 상대가 어떤 생각과 계획을 갖고 있는지 파악해야 해. 그걸 상대의 ‘의중’을 읽는다라고 해. 왜 그 수를 거기에 뒀는지 말할 수 있다는 건 결국 네가 상대를 어떻게 파악했는지, 형세를 분석한 너의 안목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된다는 뜻이야.
그냥 두는 수라는 건 ‘우연’하게 둔 수 인데 그래서는 이겨도 져도 배울 게 없어진단다.
‘우연’은 기대하는 게 아니라 준비가 끝난 사람에게 오는 선물 같은 거니까”
(미생 2편, 208~209, 장그래의 바둑사범이 어린 그래에게 가르쳐 주는 장면에서)
- “기력차가 있는 바둑에서 하수는 흑돌을 쥐고, 선수를 두죠. 더 낮은 하수는 접바둑이라고 해서 8점, 4점을 먼저 두고 시작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바둑에선 하수가 고수와 마주할 때 급을 맞춰줍니다. 그런데...사회에선, 고수를 상대로 신입사원이 접바둑을 둡니다. 고수가 이미 4점, 8점 아니...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백돌을 깐 곳에 들어가는 거죠.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신입사원, 흑돌의 규칙은 바뀌지 않는다는 거죠. 덤을 남겨야 합니다”
(미생 3편, 224~225, 장그래가 김대리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자신의 과거를 설명하며 현재의 기분을 말하는 장면에서)
-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은 ‘과정’이 전부야(김대리가 장그래에게 하는 말)
-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중략)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바둑사범이 장그래에게 해준 말)
- ‘회사 간다’라는 건 내 ‘상사’를 만나러 가는 거죠. 상사가 곧 회사죠. 상사가 좋으면 회사가 천국! 상사가 엿 같으면 회사가 지옥(미생 8편, p.187, 장그래와 딱풀 사건 동기의 대화 중에서)
- 이미 그것(내가 다녔던 회사)은 언제 내 것이었냐는 듯 차가워져 있었다. 내 인프라는 나 자신이었다(미생 9편, p.221, 회사를 떠나는 장그래의 독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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