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장인 컨설팅

직업의 의미(2)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09. 4. 20.
반응형

직업상담사 준비를 위한 시험과목중의 하나인 ‘직업정보론’ 이라는 조금 재미없는 분야를 다룬 책을 보면 직업의 정의에 대해 “직업이란 유사한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계속성’, 경제적인 거래관계가 성립되는 ‘경제성’, 비윤리적이거나 반사회적이지 않아야 하는 ‘윤리성’, 사회기여적인 의미를 가지는 ‘사회성’”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직업의 양태와 성질에 대한 정의이고 이보다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직업의 목적’, 곧 직업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직업이 내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그리고 난 직업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말이다.

난 가끔 이 뜬금없을 질문들을 컨설팅을 받으러 온 분들이나, 내 강의를 수강하는 분들에게 묻곤 한다. 그러면 대개 나오는 답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엔 두 가지 차원의 문제로 귀결된다.

바로 ‘생계유지’와 좀 거창한 표현으로 ‘자아실현’이다.

생계유지야 더 말이 필요 없는 것이지만, 자아실현은 좀 어렵다. 무엇이 ‘자아실현’일까?

이건 결국 일을 통해 내 ‘존재를 확인’하고, 또 ‘세상에 나의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것이다. 때로 그 표현은 나의 본질을 세상에 구현한다든지, 또는 세상에 기여한다든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는 ‘개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에 대해 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어떻게 설명해도 좀 어렵고 지루하다면 과감하게 대폭 줄여서 결국 ‘내 행복을 일을 통해 찾는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라고 봐도 좋다.

그런데, 워낙 세상이 돈을 중요시하다보니 ‘자아실현’ 곧 ‘일을 통한 행복찾기’가 자꾸 무시된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 ‘일을 통한 자아실현’이 조금 나타나던 시기가 있었으나, 최근의 경기불황에 맞물린 고용시장의 난국으로 다시 ‘먹고 살기’가 지상과제가 되면서 ‘자아실현이 어쩌구, 행복이 어쩌구’ 하는 것이 사치스럽게 들리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부분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 밖으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근본적으로 자아실현이나 행복추구에 대한 목적이 없는 일 혹은 직업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고단한 노동(勞動)’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이러한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은 재미없어 지고, 삶이 버거워 진다. 자신의 하루 중 반 이상을 투자하고, 평생의 시간 중 3분의 1, 혹은 절반 가까운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된다면 사람들은 누구라도 예외 없이 불만투성이의 삶을 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언젠가 ‘체 게바라의 말처럼 노동이 유희(遊戱)가 되는’ 삶을 살고 싶다던 대학생을 본 적이 있다. 함께 있던 면접관이 ‘일 한번 해보고 그런 소리해라’며 핀잔을 준 적이 있다. 아마도 그 학생의 경우는 일에 대해, 삶에 대해 그다지 진지한 경험적 접근 없이 머리로만 접근했던 탓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적어도 원론적 입장에서 나는 그 친구의 말을 지지한다.

다만, 현실에서 우리가 그러한 논리를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결단과 노력, 때로는 운이란 것까지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일이 그저 먹고 살기 위한 힘든 ‘노동’이라 여기는 것이 대세인 세상(약간의 이의가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암묵적으로는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노동이 유희’가 되는 삶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유희’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을 통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도는 생각해 가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세상을 힘들게 보는 이유 중의 큰 것 하나는 나의 의지와 무관한 삶을 ‘먹고 살기’ 위해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만약 일이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생계유지와 자아실현을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자아실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배부른 소리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의 4~5년을 정말 지독히 돈만 보고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단순히 돈이 우선이었고, 돈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돈을 조금씩이라도 모으게 된 것은 돈을 포기하고 ‘내게 맞는 일’을 쫓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 주변에도 많은 경우 돈을 찾아 떠나간 사람들이 있었지만 열에 아홉은 그 뒤끝이 좋지 않았다. 최근 SBS TV에서 방영됐던 1960년 아이비리그 대학생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스럴리 브로트닉(Srully Blotnick) 연구소 실험이 화제가 됐다.

돈을 많이 주는 직업을 찾아 떠난 1245명(83%)의 졸업생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났던 255명(17%) 학생들의 20년간 삶의 궤적을 추적한 실험에서, 비록 세속적인 기준이긴 정작 20년 후 백만장자가 된 101명을 조사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단 1명을 제외한 나머지 100명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났던 실험군에서 나왔다는 결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후에 한 블로그(http://agile.egloos.com/4784004)를 통해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실제 이 연구결과는 그 진실성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개인적 체험이나 주변의 이야기와 비교해 보아도 한번쯤 음미할 만한 맥락을 전해주는 이야기로 보여진다.

당장 눈앞의 돈을 쫓아 떠나는 것은 장기적으로 발전의 여지가 별로 없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선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이제 상식선의 이야기가 아닐까.

안다! 이 땅의 팍팍한 삶에 쫓기는 가장들에겐 배부른 자의 낭만쯤으로 들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나 세상은 냉정하다. 당장 목이 마르다고 떠 마신 바닷물로는 결코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컨설팅현장에서 특히 사정이 어려운 가장들의 경우 당장의 얼마간 돈을 위해 자신을 죽이고 가장의 의무에 충실한 선택을 하는 것을 나는 몇 번이나 보았고, 또 지금도 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당장 목이 말라 바닷물을 마시는 격임을 숱하게 보아왔다. 조금만 길게 보아도 그 상황은 다시 더 악화된 형태로 재발되는 것이다. 한번쯤 반드시 눈앞에 보이는 ‘쉬운’ 선택만을 따라가야 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컨설턴트가 보는 좋은 직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이쯤 되면 이미 많은 이들이 눈치를 챘으리라. 많은 자기계발 강사들이 하는 아주 평범한 얘기를 나도 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많은 시간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살아왔다. 당시에 나는 좀 할 만 하다 싶으면 뛰어들었고, 좀 좋아 보인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아이디어로 무장해 자신감이 넘쳤고, 어떤 일은 돈을 위해 무작정 참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의 30대 대부분은 계속되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잘난 아이디어는 나의 성향과 너무 맞지 않아 금새 엉망이 되었고, 벌겠다던 돈은 붙기는커녕 점점 재정적 궁핍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마침내 ‘내 일’을 찾기까지 난 스스로 ‘직업 부적응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곤 했었다.

하지만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고 나서 내 인생은 달라졌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자신감이 붙었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즐겁다. 쉬는 날에도 관련된 책을 보고, 좀 심한 날은 자다가도 관련된 꿈을 꾸기도 한다. 무대공포증이 약간 있는 남자에게 하루 5~6시간을 혼자서 다수 대중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맞는 일’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난 고객을 대상으로 두 단계의 방법론을 활용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심리검사나 직업관련 검사 등으로 자료를 확보해 큰 틀을 살펴보고, 두 번째는 컨설팅을 통해 세부적인 개인별 차이를 밝혀내는 과정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과정은 일반 개인이 혼자서 진행하는 것보다는 커리어 컨설턴트나 직업상담사를 찾아 함께 진행하는 것이 좋다.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전국의 다양한 기관에서 이와 같은 일을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관이 현재로선 노사공동재취업센터와 고용지원센터 등이 아닐까한다.

물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과정 속에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다. 역량 있는 조언자가 함께 해야 하고, 작업을 통해 나온 결과물을 한번쯤 과감히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어쨌거나 모든 선택은 당사자의 몫이다. 컨설턴트건 누구건 최종 단계에서는 개입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릴 수도 있는 문제는 오직 당사자만이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마지막까지 작업을 함께 해도 ‘삶의 관성’에 매몰되거나, 혹은 다른 ‘생활상의 이유’로 결과물을 선택하는 이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