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오랜 만에 시를 접한다. 일상을 보면 그럴 것 같지 않은데 나는 의외로 시를 좋아한다.
언젠가는 시상이라는 것까지 떠올라 새벽 2시에 일어나 두어 시간을 시를 지은(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지금은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적도 있다.
하지만 시는 일상에선 먼 일이다. 가끔 마음이 허할 때 위로를 얻기 위해 시를 본다.
나는 시의 농축미를 사랑하는 것 같다. 은유나 비유가 많은 글을 좋아하지 않는데, 시만은 예외다. 내 속 어딘가의 뉴런과 시냅스에 시의 통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 같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그래서 반가운 책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참 이상하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은 엉뚱한 데로까지 퍼진다.
일단, 정재찬 교수가 고른 시들과 그 해석, 흥미로운 시인들의 뒷이야기까지...중간중간 지루한 부분도 있었던 것 같지만 비교적 잘 읽힌다. 책의 제목처럼 ‘시를 모르는 사람’보다는 나같이 좋아하지만 삶의 어떤 이유들로 ‘시를 잊은 사람’에게 잘 들어오는 글들이다.
그런데 생각이 자꾸 퍼진다. 두 번째 들어온 것은 ‘강의를 이렇게도 할 수 있겠구나’다. 아무래도 강의를 하는 직업병인 것 같은데...내 강의가 살짝 진지하다. 사실 내 딴에는 치열한데...요즘 강의는 치열함을 바라지 않는 환경도 많다.
대중음악과 영화를 인용하며 경계를 넘나드는, 아웃복서처럼 살짝 다가오되, 간간이 묵직한 펀치를 날릴 법한 이런 교수법은 내게 꽤 흥미를 준다.
<신경림의 '갈대'를 읽고 찍어본 집 주변 공원의 갈대사진>
그리고 세 번째는 이 책의 사이사이에 걸려 있는 흑백사진이다. 세상에 난...이런 사진들이 너무 좋다. 흑백사진은 여백이 있다. 생각이 막 춤을 춘다. 거기에 이유를 설명할 길 없는 애잔함은 보너스다. 과거의 정취 때문일까?
끝으로 마지막까지 알뜰히 드는 엉뚱한 관점은 ‘참 편집 잘 했다’는 부러움이다. 한 때 내 책의 편집이 몹시도 아쉬웠던 사람으로서 드는 부러움이다.
그런데 참 웃기는 일이다. 시와 관련된 책에서 참 엉뚱한 것들을 많이도 봤다 싶다...어쩔까? 이게 내가 책을 대하는 프레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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