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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에릭 호퍼 자서전(Truth Imagined)/ 에릭 호퍼 著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11.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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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독특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사람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그의 책을 접해 본 것은 처음이다.

떠돌이 철학자’, ‘부두노동자이자 독학한 철학자’, ‘사회철학자’, ‘프롤레타리아 철학자등으로 불리던 그의 삶은 평생을 육체적 노동으로 보내면서도 책과 사색,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통찰을 통해 미국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사상가이자 작가의 삶이었다.

 

흔히 인용되는 그의 삶은 이렇다.

뉴욕에서 독일계 가구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세의 나이에 어머니와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2년 후 그는 시력을 잃었고,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사실상 가정부의 손에 자라다시피 한 그는 15세에 기적적으로 잃어버린 시력을 회복한다. 이때부터 그는 언제 시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독서에 파고들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10대 후반에 그는 겨우 300달러만 가지고 거리로 나오게 된다.

 

그 이후의 삶은 익히 알려져 있듯이 거리의 일용노동자, 사금 채취공, 시골의 추수작업 인부 등을 거쳤고, 종래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해 부두노동자로 다시 25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그 기간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다양한 사람들, 특히 하층민 사람들을 만나며 미국 사회와 사람들의 삶을 통찰하며 자신만의 사고 체계를 세우게 된다.

 

그의 글은 그리 길지 않은 문장으로 인해 저서 대부분이 아포리즘(잠언, 격언, 경구 따위로 깊이 있는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는데 실제로 이 책은 길지는 않지만, 읽기에 묘하게 불편한 점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짧지만 요소요소 쉽지 않은 문장임을 느낀다. 어쩌면 생각의 도약이 심한 아포리즘의 특성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반드시 쉽지 않은문장이 있다면 두 번, 세 번이라도 다시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불편한 부분에서 오히려 그의 철학적 진면모가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정도의 불편함은 그가 보여주는 사고의 참신함,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 묻혀버린다.

마치 무소유의 법정 스님을 연상시키는 그의 삶은 어떤 면에서는 좀 더 치열한 육체적 인고를 살다 간 이의 흔적을 보여 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한 사람의 철학자, 지식인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지라 내겐 더욱 그렇다.

이 책을 통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하지만, 또 그토록 자유롭고 지적인 그의 영혼의 한 자락을 느껴본다.


 

 

마음에 남다>

- “에릭, 앞날에 대해 안달하지 마라. 넌 마흔 살밖에 살지 못할거야.”(호퍼가의 사람들이 단명하는 것에 대해 가정부이자 실질적 양육자였던 마르타가 해 준 말)

그 말은 내 가슴 속에 뿌리를 내렸고, 내가 몇 년 동안 노동자로 철따라 떠돌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데 바탕이 되어 주었다. 나는 삶을 관광객처럼 살아 왔다.(p.17)

 

- 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다가 담당자의 눈이 앞의 다섯 줄은 지나치고 여섯 번째 줄의 중간에 머무는 때가 많다는 것과 붉은 종이로 싼 책이 담당자의 주의를 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여러 가지 다른 얼굴 표정을 짓는 일도 시도해 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 때에는 세상에 아무 걱정도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명랑한 모습이 담당자의 주의를 끌었던 것이다. 그런 요령으로 나는 하루에도 일자리를 여러 번 구할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안심이 되었다.

몇 년 동안은 그런 식으로 보냈다. 돈을 별로 쓰지 않고 살면서,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수학이나 화학, 물리학, 지리학 등의 대학교재로 독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을 돕기 위해 노트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는 일에 열중했고, 제대로 된 형용사를 찾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p.25)

 

-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인 요소이다. 상승의 동력은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고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p.27)

 

- 점심을 먹으려고 앉아서 돈을 셀 때 나는 깊은 회의를 느꼈다. 그것은 내가 결코 느껴본 적이 없던 수치심이었다. 내가 스스럼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고, 물건을 팔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 경우에 장사는 타락의 근원임이 분명했다. 장사를 위해서는 거리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터였다. 나는 타락의 소지가 다분했고, 따라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처음으로 해 본 일용 오렌지 판매행상에서 동이 날 정도로 많이 판매한 후, 그가 판매 일을 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해.....p.30)

 

- 자유란 일부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지만, 대부분에게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조건에서도 자유를 느낀다는 것은 아마 진실일 것이다.(p.41)

 

- 이런 저런 것만 있으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불완전하고 오염된 자아에 있다는 인식을 억누르는 것이 된다. 따라서 과도한 욕망은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억누르는 수단이 된다.(p.55)

 

- ‘나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길로 나서야만 한다. 도시마다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도시마다 자기도시가 최고라며 나에게 기회를 잡으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 기회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것이며,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지만 그 일요일에 노동자는 죽고 방랑자가 태어났다.(자살을 중도에 포기한 직후, p.57)

 

- 성장과정을 말에 대해 불신하게 되는 과정과 동일시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성숙한 이는 자신의 귀보다는 눈을 더 신뢰한다. 눈의 명료함보다 말을 더 믿는 데에서 비합리성이 나타난다. 어린아이와 미개인, 그리고 맹신자들은 그들이 보아온 것보다는 들어왔던 것들을 더 잘 기억한다.(p.69)

 

- 우리는 주로 자신이 우위에 설 희망이 없는 문제에서 평등을 주장한다. 절실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절대적 평등을 내세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런 시험에서 공산주의자란 좌절한 자본주의자라는 것이 드러난다.(p.83)

 

- 나는 헬렌을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기대를 정당화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내 인생을 소비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학 분야의 사람들은 곧 나를 협잡꾼으로 여길 것이다. 내 재능이 뛰어나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그녀들과 함께 살면 나는 한순간의 평화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즉각 행동으로 옮겨야 했다. 나는 길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수확철이 다가오자 나는 그녀들에게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바클리를 떠났다.(평생 마음의 연인이었던 헬렌을 떠나며, p.123~124)

 

- 교육이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학생인 배우는 사회이다.(p.137)

-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상투어를 만들어낸 사람은 악의 본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며, 인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p.151)

 

- 절대 권력은 선의의 목적으로 행사될 때에도 부패한다. 백성들의 목자를 자처하는 자비로운 군주는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양과 같은 복종을 요구한다.(p.165)

 

- 행복이란 거의 없다. 나이 든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때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노년에 자신의 생을 되돌아 본 많은 위인들은 자신들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합쳐보아야 채 하루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완전히 불행했던 순간들을 살았던 것일까? 내가 헬렌에게서 달아난 이후로는 순간들이 아니라 몇 년 동안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별은 마음과 몸 모두를 해쳤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나는 결코 완전히 회복된 적이 없었다.(p.171)

 

- 난 생계비를 벌기 위해 하는 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는 모둔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산타야나(Santayana)는 일이 의미 있기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몰염치라고 말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산업사회에서는 수많은 일이 끝나고 나면 별 의미가 없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요. 내가 하루에 6시간씩 1주일에 5일 이상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일이 끝난 뒤에는 실질적인 생활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에요.(1974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세일러 K. 존슨과의 인터뷰에서 일흔 두 살의 에릭 호퍼’. p.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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