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
사람의 행복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다. 그러면서도 지독한 편견과 모호함이 만연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나 자신만의 ‘행복론’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주관화될 수밖에 없는 이 영역을 과감하게도 객관적인 사람들의 삶에 대한 평생의 관찰을 통해 밝혀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니 그것이 이 책의 기본연구인 그랜트 연구와 터먼 연구, 그리고 이너시티 연구다.
조지 베일런트는 그야말로 세계 최장기의 성인발달연구를 통해 행복에 관해 이야기하는 하버드 의과대학의 교수로 한 평생을 그 역시 위 연구들과 함께 해 온 사람이다.
성인발달, 그리고 성공적인 노화,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인간의 행복에 이르는 일련의 주제를 그는 이 책을 통해 조금 복잡한 과정을 통해 아주 간명한 결론들을 내어 놓는다.
그러나 이 책이 어쩌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단순한 인간행복에 관한 결론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하고, 놀랍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은, 총 814명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3개 집단(하버드 졸업생 집단 268명(그랜트 연구), 이너시티 집단(대도시 중심부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14세 남학생 500명으로 법적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는 아이들), 터먼 여성 집단(스탠퍼드 천재아 연구의 대상이었던 90명의 여성))을 이미 1920~30년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데 기인한다.
삶의 통찰력을 높여주면서도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것들에 대한 확인, 그리고 행복이나 성인발달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확고한 자료를 통해 반박하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읽는 동안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 또한 약점이지만, 몇 번을 되새김질하며 읽어야 할 만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이 이 책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실험대상자들의 삶을 함께 따라가는 작업은 몹시도 매력적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수십 년을 지켜본 연구조차도 인간의 다양성과 독특함,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삶의 전개는 참으로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은....그래서 삶은 이다지도 흥미롭고 오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남다>
- 성인발달연구로부터 찾아낸 주요성과들
* 우리에게 일어났던 나쁜 일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노년은 우연히 만난 훌륭한 인물들 덕분에 보장되기도 한다.
* 인간관계의 회복은 감사하는 자세와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이루어진다.
* 50세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면 80세에도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50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고 해서 80세에 반드시 건강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 알코올 중독은 (불행한 유년 시절과는 관계없이) 분명 실패한 노년으로 이어진다. 알코올 중독은 부분적으로 장차 얻을 수 있을 사회적 지원을 가로막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 은퇴하고 나서도 즐겁고 창조적인 삶을 누려라. 그리고 오래된 친구를 잃더라도 젊은 친구들을 사귀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수입을 늘리는 것보다 한층 더 즐겁게 살 수 있다.
* 객관적으로 신체건강이 양호한 것보다 주관적으로 건강상태가 좋다고 느끼는 것이 성공적인 노화에 훨씬 더 중요한 요소다. 다시 말해 스스로 자신이 병자라고 느끼지 않는 한 아프더라도 남이 생각하는 것만큼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 (p.49)
- 노년에 대한 논쟁에서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어느 쪽이나 다 옳기 때문이다. 노년에 비참해질 수도 있고 즐거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긍정적으로 늙어간다면 질병, 갈등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노화에 대한 제3의 관점, 흑백논리에 치우치지 않는 새로운 관점이 존재할 수도 있다.(p.52)
- 전향적 연구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나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연구 대상자들에게 알코올 중독의 원인이 우울증이라고 진단 내릴 때가 종종 있었으며, 당사자들도 대부분 나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러나 정신과의사 두 명이 각기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초점을 두고 연구해 온 기록들을 살펴본 결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왔다. 알코올 중독 증세가 먼저 나타나고,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었다. 두 가지 증세를 동시에 앓는 경우, 우울증에 걸려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사람이 허다했다.(p.73)
-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이 연구의) 결점은 장기전향적 연구가 보편성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 규모나 역사적 시간, 구성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구는 하버드 졸업생, 청소년 범죄에 빠지지 않은 이너시티 출신자, 지능이 우수한 터먼 여성들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비교적 조건이 양호한 사람들의 삶의 양태만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인간 일반을 모두 아우를 수 없을 것이라고 의문을 던지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생물학적 성장을 이해하기 위해 최적의 기후와 생장조건이 필요하듯, 인간 일반에 대한 연구도 그와 비슷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이다.(p.77)
- 성인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발달과업(p.89~94)
* 정체성: 청소년들은 성인기에 들어서기에 앞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정체성이란 부모로부터 독립된 자기만의 생각, 즉 자기만의 가치, 정치적 견해, 열정, 취향 등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삶의 다음 단계인 친밀감으로 나아가고, 배우자와 정서적 결속을 맺고 친밀하게 지낼 수 있다.
* 친밀감: 자신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관심을 확대하는 것(중략) 남성연구 대상자들의 경우 대부분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친밀감을 경험했다
* 직업적 안정: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의 세계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중략) 직업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전제로 성립되기 때문이다. 성격에 심각한 결함이 있어 평생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분명 적지 않다.
* 생산성: 생산성은 다음 세대를 헌신적으로 지도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을 때 성취되는 과업이다.(중략) 친밀감이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자질을 기반으로 성취되듯이, 생산성은 자기보다 나이어린 사람들을 보살피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상호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기반으로 성취된다.
* 의미의 수호자: 생산성과 그에 따른 미덕인 ‘보호’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돌보는 데 한정된다. 그러나 의미의 수호자는 역할과 그에 따른 미덕인 지혜와 정의는 특별하게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정의’는 ‘보호’와 달리 어느 한쪽만을 지지하지 않는다. 의미의 수호자는 자기 아이들의 성장보다는 인류의 집단적 성과물, 즉 인류의 문화와 제도를 보호, 보존하는 데 초점을 둔다.
* 통합: 에릭슨은 ‘세상의 이치와 영적 통달에 도달하는 경험’이 바로 ‘통합’이라고 정의했다.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오직 하나뿐이며, 한번 태어나 한번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통합’이다. 생산성의 미덕이 ‘보호’라면, 에릭슨이 제시한 통합의 미덕은 바로 ‘지혜’다.
- 하버드 연구 대상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노년에 이른 사람과 최악의 노년에 이른 사람의 유년기를 비교해 보았을 때, 둘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중략) 고아로 자라난 사람이라도 80세 즈음이 되면 부모 품에서 사랑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게 행복하고 기운이 넘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족스런 노년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수입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연구의 세 집단들을 살펴본 결과,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훨씬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중략) 알코올 중독자가 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불행한 유년기를 보내지는 않았으며,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알코올 중독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알코올 중독자를 부모로 둔 이들의 유년기는 열이면 열 모두 다 불행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면, 유년기의 불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덜 중요해진다.(p.150~151)
- 세 집단을 통해 살펴본 결과, 노년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를 가장 강력하게 시사해 주는 것은 에릭슨의 생산성 과업을 달성했는지 여부였다.(p.172)
- (70대 이후의) 건강한 삶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여섯 가지 변수(p.287~288)
* 조상의 수명/ 콜레스테롤/ 스트레스/ 부모의 특성/ 유년기의 성격/ 사회적 유대관계
- 건강한 노년을 부르는 일곱 가지 요소(p. 291~294)
* 비흡연 또는 젊은 시절에 담배를 끊음
* 적응적 방어기제(성숙한 방어기제): 세 집단 모두에게 행복하고 건강한 노년을 약속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
* 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 알맞은 체중/ * 안정적인 결혼생활/ * 운동
* 교육연수: 노년의 신체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교육의 요소는 아이큐나 유년시절 가정의 소득이 아니라 자기관리와 인내심이다.
- 보람 있게 은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활동으로 다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 첫째, 부모님이나 삶의 동반자가 사망한 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은퇴한 사람들에겐 직장 동료들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만남이 필요하다. 때로 손자 손녀들과의 관계가 이를 대신할 수도 있다.
* 둘째, 놀이 활동이다. 자만심을 버리되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 창조성을 위해서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 고독이 필요하기도 하다.
* 은퇴 뒤에도 평생 공부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성숙한 삶의 결실을 얻는 동시에 천진난만한 호기심을 되살릴 수 있다.(p.313)
- 여러 면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젊은 시절보다는 나이 든 뒤에 더 행복해진다. 젊은이는 난봉을 일삼지만, 노인은 점점 더 현명해진다.(윈스턴 처칠의 말 인용, p.348)
- 일곱 가지 방어요소들도 네 가지 개인적인 자질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 네 가지 자질은 세 연구 집단 모두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자질들이다.
* 미래지향성: 미래를 예견하고, 계획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능력
* 감사와 관용: 불평하는 것이 아닌 감사하는 마음, 추수감사절은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 아니며, 편집증이나 부정축재는 노년을 망쳐버릴 수 있다
*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易地思之):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느긋한 태도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
*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 해주기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 (p.411)
- 품위 있게 나이 드는 것(75세에서 85세 사이의 특성들) (p.418~419)
* 첫째,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새로운 사고에 개방적이며, 신체건강의 한계 속에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다.
* 둘째, 그들은 노년의 초라함을 기쁘게 감내할 줄 알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 사실을 품위 있게 받아들였다.
* 셋째, 그들은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늘 자율적으로 해결했으며, 매사에 주체적이었다. 그들은 삶 자체가 하나의 여정이며, 살아가는 동안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겼다.
* 넷째, 그들은 유머감각을 지녔으며, 놀이를 통해 삶을 즐길 줄 알았다.
* 다섯째, 그들은 과거를 되돌아볼 줄 알았고, 과거에 이루었던 성과들을 소중한 재산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들은 호기심이 많았고, 다음 세대로부터 끊임없이 배우려고 노력했다.
* 여섯째, 그들은 오래된 친구들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도 “사랑의 씨앗은 영원히 거듭해 뿌려져야 한다.”는 앤 머로 린드버그의 금언을 늘 가슴에 새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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