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著
역사를 다루는 흐름은 대단히 서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방식마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어느 왕의 시대,어떤 일이 있었다’는 식의 서술은 보는 이에게서 흥미를 빼앗는 간단한 방식의 하나다.
초등 딸아이가 매번 ‘이딴 걸 왜 외워야 하느냐’며 물어볼 때엔 적절한 답을 해주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 일단 요즘 보기 드문 두께에 질리지만, 한번 펼치면 생각보다 쉽게 빠져든다. 탁월한 글 솜씨, 그 이상으로 탁월한 역사에 대한, 인간에 대한 지식이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이토록 깊은 주제를 이렇듯 감각적이고 흥미롭게 펼쳐놓은 책은 오랜만이다. 예전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을 보고 느낀 ‘대가란 이런 것인가’라는 느낌이 다시 느껴졌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역사를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그리고 과학혁명의 시대로 나눈다.
언어를 이용해 우리의 인지체계에 혁명을 가져옴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된 호모 사피엔스는 그를 통해 협력을 끌어냄으로써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농업혁명을 통해 조금씩 자연을 길들이는 방법을 배웠고,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진정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위험스럽기까지 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 과학혁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을 피력한다.
사실 이 책의 곳곳을 흐르는 생각들은 지독할 정도로 객관적이다. 어쩌면 냉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빠른 시기에 모든 생물들의 최상위 포식자가 된 인간이 그토록 잔인한 행보를 보여 왔음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대부분의 역사는 전쟁의 잔혹함이나 힘든 서민들의 어려운 삶을 보여주기는 하나 인간 전체를 하나의 종으로 보아 다른 종과의 형평성 문제를 논하지는 않는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가축을 다루는 방식이나, 혹은 익히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초기와 제국시대를 거치면서의 사피엔스의 정복행렬이 얼마나 참혹했던지를 다시 한 번 명확히 되짚어 주고 있다. 그 냉정함에 약간의 허무감마저 들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의하면서 더욱 무서운 것은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비교적 과학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지만 직업의 특성상 세상의 변화에 좀 더 촉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막상 촉을 세우고 보는 세상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만큼 빠르다. 그 발전 속도에 비해 인간의 성숙도는 늘 한참을 모자란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때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저자는 우리가 만든 과학기술에 멸종되거나 어쩌면 죽음마저 정복하는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새로운 종이 될 수도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지금 이대로는 폭탄을 가지고 노는 아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유발 하라리의 마지막 질문이 그래서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이 발전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우리는 언제쯤 이 질문에 ‘함께’ 공유하는 답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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