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그리고 김훈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이제야 읽었다.
최근 독법이 바뀌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다가 또 흥이 나면 다 읽지 않은 상태로 다른 것을 또 읽다보니 산만한 독서가 되어 무려 네 권이나 한꺼번에 읽는 중이다.
김훈은 드물게 대중적으로도 평론으로도 성공한 작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한 번에 쭉 읽어 내려 간 것이(제일 늦게 시작해 제일 빨리 읽었다. 하긴 소설은 이 것뿐이었지만) 김훈의 힘인지, 일반적인 매력의 소설이 갖는 힘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워낙 오랜만에 읽는 소설인지라 생소한 느낌에 생각보다 어렵고 고풍스러운 문체가 읽기에 쉽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에 새로운 상상력을 덧붙인 분야를 팩션(Faction)이라고 한다.
다만, 이 소설은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사료를 근거로 작가의 상상력을 약간 더 입힌듯한데 스토리의 진행에 상당한 사실적 무게감이 진하다.
개인적으로 팩션은 역사적 시대를 오늘의 시각으로 재해석한다는 것이 묘미라 생각하는데 이 책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어쩔 수 없이 요구하는 매력이 있다.
병자호란을 맞이한 시대, 각자의 입장에서 철저한 자기논리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민초들의 이야기, 삶의 당위와 시대를 지배했을 국가의 논리 등이 팽팽하게 맞선다.
전란의 와중에서 고통 받지만 또 그렇게 적응해가는 민초와 자신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도 특별히 할 것이 없는 양반들의 모습, 명분과 실리를 놓고 다투는 김상헌과 최명길의 이야기, 그리고 마치 동떨어진 섬과 같은 느낌의 왕의 존재까지...
한 발짝 물러선 듯한 작가의 논조와 짧은 문장은 원래 내 취향이다. 그런데 글의 흐름이나 묵직함, 그리고 고풍스러운 문체는 자칭 ‘생계형 작가’라는 김훈의 말을 의심케 할 정도로 작가적 향취가 묻어난다.
몇 년간 소설을 멀리하고 영상이 주는 쉬운 결말과 스토리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사회과학 서적이 주는 실용적인 측면의 친절함에만 익숙해진 탓일까?
무어라 표현하기 모호한 묵직함만이 가슴에 남아있다. 메마른 감성, 뭐든 명쾌한 결론을 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내 편협한 속성으로는 쉽게 표현할 길이 없다. 하긴 소설에 정답을 구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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