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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시니어 컨설팅

회사와의 계약, 일은 누구를 위해 할까?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1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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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회사, 모두가 달라졌다

 

“회사를 위해 내 20년이 넘는 청춘을 바쳤는데 이제 와서 나를 버렸다.”라는 한탄을 하는 퇴직자를 본 적이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상위 1%급의 회사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다 구조조정으로 본의 아닌 희망퇴직을 하신 분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우리 시대의 좋은 직장을 다닌 사람과 너무나 어렵고 열악한 직장을 다닌 이들 모두를 컨설팅 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의 격차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같은 연령대라도 누군가는 연봉 2000만원이 넘으면 감사해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거의 억대의 연봉을 받다가 5천 정도의 제안이 들어오면 ‘자신이 추락했다’며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그 묘한 괴리감에 씁쓸한 느낌에 젖을 수밖에 없다.

 

근로자가 회사를 위해 젊음을 바쳤다’라는 표현에는 실상 양면성이 공존한다. 글자 그대로 회사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다닌 이도 드물게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결국 자신을 위해 일한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노동도 있고, 인간의 역사에는 강제로 노역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의 현실 속에서는 어떤 식이든 우리 스스로 결정한 노동이 맞다. 비록 제한적일망정, 우리는 할 수 있는 선택 중에서 스스로에게 유리하다고 믿는 쪽으로 움직여 직업을 선택하고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친’ 이면에는 ‘한 사람의 20년을 어쨌든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회사가 지원해 주었다’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직장인의 배신감에는 이유가 있다. 잘 먹고 잘 살았지만, 그에 비례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것도 사실일 것이고, 또 이전 그들이 일을 시작하던 무렵에는 회사 측이 나서서 ‘회사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주입했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다만, 그런 패러다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세상의 흐름이 점차 변했고, 요즘 시대에는 회사도 스스로 가족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고 면책이 되는 세상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 물론 아직도 일부 회사들에선 예전 역사서에나 나올 법한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하는 곳이 있고, 아직도 가정보다 회사를 우선시 하며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흐름은 이제 합리적인 계약 관계로 이전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책임감과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계약은 무거운 것이다. 한 사람이 피고용인으로 계약을 맺었으면 그에 상응한 행위를 해야 한다. 고용인 역시 그에 따른 정확한 보상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계약관계 이상의 애정이 생기면 그만큼 서로에게 더 주면 좋은 것이지만 계약을 넘어선 애정을 일방에게 강요하기는 어렵다.

다만, 나는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이 이러한 계약에 대해 좀 더 진지한 생각을 가졌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다. 요즘의 신입사원들은 능력이 뛰어나고 감각적이지만, 조금 단편적인 느낌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직업에 있어서는 늘 시야를 길게 가져가야 한다. 경력은 일종의 누적이고 흐름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한번 틀어지거나 나쁜 평을 받아도 헤쳐 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더 힘들어 질 수밖에 없다. 어쩌다 경력의 일탈이나 나쁜 평판이 이어지기라도 하면, 실상 경력관리에서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안 되는 건 없을지라도 극복에는 상당한 수준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합리적 계약이라는 이면에는 서로가 지켜줘야 할 것이 많다. 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내용들은 흔히 말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으로 묶여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규제되지 않는 영역에서도 서로를 위해 노력해줘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계약의 좋은 결과를 위해 개인과 회사가 노력할 때 서로가 좋은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규직이란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정규직이라도 이런 부분에 대한 위반이 누적되면 언제고 회사에서 밀려날 수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말 하는 것도 없는 사람을 지키는 방패로서 정규직이 사용된다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문제가 될 것이다.

 

누군가는 힘이 있는 회사와 힘이 없는 개인 간에 무슨 합리적 계약이 가능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사실이다. 현재는 개인들이 월등히 불리한 조건이다. 그래서 복지가 있고, 근로기준법이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러한 문제를 당장 법률에 의지해서만 풀어나갈 수는 없다. 그건 정치적인 문제고, 사회의 발전과도 맞물린다.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은 우리 스스로 자기를 챙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힘없는 개인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내 팽개치고 회사만을 위해 올인하는 것도 위험하다. 개인의 삶이 피폐해지면 결국 그 모든 것이 부메랑이 되어 회사생활에서도 돌아오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개인이 되야 한다. 회사에서의 힘은 곧 실력이다. 1등만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회사가 개인을 붙잡을 만한 근거는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라. 회사에 대한 별다른 기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이를 한번 품었다고 계속 높은 급여를 주면서 끼고 가기를 바라는 것이 합리적일까.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오로지 정리(情理)만으로 조직이 움직여지게 된다. 그러나 그런 조직의 생존은 이제 쉽지 않다.

 

일은 당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일할 맛도 더 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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