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째 나의 다이어리엔 ‘좋은 친구 만들기’가 연간 목표로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몇 년째 이 목표는 성과가 별로 나지 않는다. 노력을 전혀 안 한 것은 아닌데, 참 쉽지 않은 목표가 되고 만다.
가만히 이유를 찾아보다 두 가지 원인을 찾아냈다. 그건 ‘이기심’과 ‘남을 쉽게 재단하는 경향’의 탓이었다. 나 역시 이 그늘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좋은 친구 만들기는 내 현재 진행형의 목표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요즘만큼 ‘자기애’가 유행한 적이 있을까? 누가 뭐래도 요즘은 자기애의 시대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아끼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는 어떻게든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자기애가 강해질수록 타인과의 관계는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희생하고, 노력하는 것이 흔치 않은 미덕이 되어 버렸다. 특히나 중,장년의 경우는 생활 때문에, 가족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데 아직 그들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친구란 ‘그런 험한 것도 손해를 감수하며 친구를 위해 해 줄 수 있어야 친구’라는 아이러니한 존재다. 나는 못하면서 남에게만 바라는 경향이 있다. 이래서야 친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스워진다.
과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친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제 쉽게 그러질 못한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다(실제 있고 없고는 중요치 않다. 그저 당사자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일 뿐). 어쩌면 마음조차 없는지도 모른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데, 늘 우리 마음의 곳간이 비어있다고 느끼는 탓이리라.
두 번째는 우리가 나이 들수록 점점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이 사람이 내게 무슨 도움이 되지?’, 혹은 ‘이 사람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와 같은 판단이 따라온다. 정작 자신에 대한 판단은 무뎌지고, 관대해지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점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그러니 한, 두 번만 관계가 틀어져도 ‘친구’를 운운하기는 어려워진다.
살아가면서 생긴 경험이 지혜가 아니라 섣부른 날선 판단의 도구로만 작용을 하는 탓이다. 타인의 실수에도, 혹은 타인과의 차이에도 그다지 지혜롭게 대처하지 못한다. 판단은 빠른데 정작 해결책을 배워오지 못했다. 슬픈 일이다.
예로부터 좋은 친구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었다. 현명한 투키디데스는 일찍이 친구를 얻는 방법에 대해 ‘친구를 얻는 방법은 친구에게 부탁을 들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이미 이기심과 일방적으로 외부로만 날카로워진 판단으로 인해 사람들의 삶엔, 특히 중,장년에겐 좋은 친구가 드문 시대가 되어버렸다. 내가 좋은 친구가 될 자신이 없는데 좋은 친구를 바라는 건 어떤 기준으로 봐도 욕심일 뿐이다.
만약 지금 외롭다면 주변을 위해 자신을 좀 죽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기심도 날선 판단도....
어느 누구도 그런 것들로 무장한 이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정히 이런 것들을 없애지 못하겠거든 친구란 존재 없이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냥 아는 사람’말고 ‘진짜 마음에 그리는 친구’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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