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를 보면 온통 오디션 열풍임을 느낄 수 있다. ‘슈퍼스타 K’란 프로그램으로부터 촉발된 오디션 포맷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여기저기서 각종 비슷한 내용의 프로그램이 등장했는데 아마도 한동안은 인기몰이를 할 듯하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프로그램의 인기보다 거기에 자신의 재능이 노래에 있다고 믿고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였다. 전회의 인기에 힘입은 ‘슈퍼스타 K2’에서의 참여자는 거의 백 삼십 여만 명이라고 하니 정말 놀라운 숫자가 아닌가? 과연 그들 중에 얼마나 가수란 이름의 직업을 얻고, 또 그 중에서도 ‘성공’이란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을까를 추측해보면 참 아득한 확률이란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한 30대 후반의 여행사를 운영하던 남성 H씨와 상담을 한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길을 확정하고 여행업에 뛰어들었고, 10년 정도를 자신의 일에 종사했는데 정작 성공은 거두지 못했었다. 좀 더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성공이 아니라 생계해결이란 원초적인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버리고 다른 곳에 취업을 해 볼 생각으로 내가 일하는 곳을 방문했었다.
그 분의 “제가 적성을 잘못 파악했던 것일까요?”라는 물음에 나는 잠시 내가 잊고 있었던, 그러나 반드시 설명이 되었어야 할 한 부분을 발견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가라는 말만 했지, 과연 그것이 ‘성공’과 직결되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었다.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발견하기도 힘든 적성을 찾는 이유의 이면에는 ‘내게 맞는 것을 찾아 일하게 되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기대가 숨어 있을 터였다.
우리는 우선 H씨가 적성에 맞는 일에 종사했었는지의 여부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몇 가지 직업관련 검사의 결과를 놓고 추론해 보니 여행업을 했던 그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적성을 찾는 것도 일종의 확률게임과 같은 것이라 ‘그럴 개연성이 높다’라는 결론만 나오지 ‘백 프로 이것이다’라는 따위의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다. 하지만 여러모로 보아 그의 적성은 여행업과 어울리는 것으로 보였다. 비단 검사의 결과뿐 만이 아니라 이후 이어진 상담을 통해서 나는 그러한 결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분의 말과 행동 면면에선 ‘여행’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왔다.
나는 그분에게 다시 한 번 자신의 일에 도전해 보시기를 권했다. 굳이 생활이 어렵다면 다른 여행사에 직원으로 들어가더라도 그 방면을 완전히 떠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나 H씨의 생각은 확고했다. 일단 실패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그는 자신의 일을 떠나고 싶어 했다. 거기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란 것도 한 몫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컨설턴트에게는 개입의 한계라는 것이 있다. 어떤 결정도 직접적인 개입은 하기 힘들다. 그것은 오롯이 자신의 인생에 관한 책임을 져야하는 고객의 몫이다.
H씨는 자신의 일과 하등 관련이 없는 지자체 시설의 경비직을 택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조금은 주제넘은 말을 했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 일’에 대한 미련이 선생님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릅니다.”
1년이 지난 후 그를 만날 일이 있었다. 여행업에 관해 잠깐 문의할 일이 있어서였는데 그는 여전히 경비 일을 하고 있었다. 가볍게 맥주를 한 잔 하며 얘기를 나누던 중, 나는 여행에 관한 일을 얘기할 때 빛이 나는 듯한 그의 눈을 볼 수 있었다.
‘언젠가는 돌아갈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스스로 했다. 아마도 떠나있던 시간이 그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10년간 지속적으로 한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늘 같은 색 안경을 끼고 보는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신선한 아이디어가 부족했노라'며 얘기했지만, ‘지쳐 있을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는 잠시 그 일에서 떠나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그에겐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적어도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애정과 여행업에 대한 애정의 차이는 극명했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일을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그렇다면 그분은 왜 성공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토록 자신의 일에 강한 애정이 있는데도 말이다. 도대체 성공과 적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나는 일단 적성은 성공에의 ‘필요조건’이라고 본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적성이 맞는 일이라야 성공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했고, 초인적 노력으로 이것을 극복한 사람을 보았다.’라는 식의 반론을 제기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논지는 두 가지 허점이 있다. 첫 번째는 성공의 정의가 돈만으로 측정 기준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러한 ‘초인적 노력, 즉 참아내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 역시 그가 가진 적성의 하나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많은 재취업 컨설턴트들이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라고 그토록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적성에 맞는다는 것의 의미를 앞에서도 밝혔거니와 적성에 맞는 일은 우수한 이해도, 성취도, 지속력 외에 어려운 상황이 왔을 때도 적성에 맞는 일은 훨씬 잘 버텨낼 가능성이 높다. 그건 결국 속되게 표현하면 ‘쉽게 망하지 않을’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성공한다’ 라고 표현하는 의미는 조금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성공’은 아마도 세속적 기준으로 ‘돈을 많이 벌다’ 혹은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지는 데, 이 경우는 쉽게 측정키 어려운 다른 가변요인의 성공적 결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회적 의미로 누군가 ‘성공’ 한다는 것은 의외로 ‘운(運)’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운의 요소’는 그냥 오지 않는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과 성공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지속적인 노력, 그리고 어떤 기회가 왔을 때 알아 볼 수 있는 통찰력과 그에 합당한 역량까지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 노력들을 단순히 적성에 맞는 일을 한다는 것과 동일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연기에 재능이 있고 적성에 맞는다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러한 청소년들 중 그들이 꿈꾸는 연예인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너무나 적다. 물론 여기에는 잘못된 적성 판단도 한 몫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적성에 맞는다는 말은 단지 성공에 대한 최소한의 필요요건을 채워주고 확률을 높여 줄 따름인 것이다.
요즘 행해지는 자기계발 강의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오해를 일으킬 여지가 많다. 적성 부합과 성공은 ‘=(같음)’이 아니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여기서의 성공이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적성에 맞는 이들 사이에서도 어차피 성공한 소수와 평범한 다수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맞는 일을 하는 것 자체로, 그리고 그것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자체로, 그 속에서 내가 만족감을 다른 것보다 더 얻을 수 있는 것 자체로 ‘성공’이라 칭할 수 있다면 그건 적성과 성공이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원한다면 플러스 알파적인 요인들, 눈물과 땀, 끊임없는 시도가 만들어내는 운(運)이란 요인까지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게 뭐냐며 섭섭해 하실 지도 모르겠다. 그럼 반대로 말하면 그 의미가 더 강하게 다가올까?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이는 자신의 만족이 기준이건, 혹은 돈이 기준이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라고 말이다.
'직장인 컨설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줄어드는 일자리들 (0) | 2012.04.15 |
---|---|
대기업 직원을 바라보는 중소기업의 시선 (4) | 2011.12.13 |
일자리 부탁은 정말 정직하지 못한 일일까? (2) | 2011.10.21 |
컨설턴트의 고민 (0) | 2011.07.28 |
승자독식의 사회, 심화되는 파레토의 법칙, 그리고 일 (0) | 2011.06.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