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어떤 고객과의 상담에서 주변의 지인들을 활용하는 취업네트워킹에 대해 설명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분은 ‘어떻게 자신에게 부도덕한 청탁 같은 것을 하라고 얘기할 수 있냐?’며 화를 버럭 냈었다.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그분께 뇌물을 쓰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리고 도와줄 수 있는 분들, 혹은 도움을 주고 싶은 분들이 도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놓자는 취지였는데 마치 뇌물이나 쓰라는 듯이 받아 들이셨으니 당황스러울 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그 분과 나 사이에 한 가지 다른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오해가 발생한 것 같다.
그것은 ‘무능력한 경우에도 추천을 해 줄 것’이란 그 분의 생각과 ‘역량이 있다면 기꺼이 추천을 해 줄 것’이란 나의 믿음 사이의 괴리가 만든 오해였다.
그분은 정말 능력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단순히 아는 얼굴이라고 일자리를 알선해 줄 것이라 믿었을까? 그럼 회사에서 내부 직원이 좋은 인재를 추천해 줄 경우 돈을 주는 현실에 대해선 그분은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일단 화가 난 사람에게는 옳고 그름이 먹히지 않는다. 특히나 감정적인 분이라면 의미가 없기에 그냥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다른 방법을 찾도록 알려드렸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엔 오픈 잡(open job)과 히든 잡(hidden job)이란 말을 이해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구분은 일자리가 공식적으로 오픈된 상태인가? 아니면 일부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숨어있는 일자리인가에 따라 구분된다. 누군가는 숨어 있는 일자리도 있는가라고 궁금해 할 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있다. 아니 구인시장 전체로 볼 때는 훨씬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보자.
한 회사에서 부장의 자리가 비었다. 이 경우 부장의 자리는 어떻게 채워질까? 바로 공고를 내고 사람을 뽑을까? 당연히 아니다.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수순은 진급 예정자, 즉 차장급들 중에서 승진할 수 있는 케이스를 찾아 채우는 것이 제1순위다. 내부승진의 케이스다. 만약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경우, 특별히 그 분야의 노하우를 가진 외부 인물의 수혈이 필요한 경우 그것이 밖으로 나오는데 그때도 역시 공공연히 오픈시키기 보다는 규모가 있는 업체의 경우라면 헤드헌터들이 있는 서치 펌에 의뢰를 하거나, 혹은 최근 외국계 기업들이 많이 활용하고 있는 내부 추천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 우선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면접의 공신력이 떨어지는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미 많은 인사담당자들도 인정하듯이 면접의 공신력이 많이 떨어졌다. 최근에 대기업 등에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라면 몇 번씩 면접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예 스터디까지 만들어 놓고 대비하는 경우가 많다. 전직지원센터 같은 곳에서는 시뮬레이션실까지 운영하며 경력자들을 위한 면접 트레이닝을 한다. 전문가들이 훈련을 시킬 경우, 어지간한 수준에 있는 분들이라면 짧은 시간의 면접쯤은 자신의 이미지를 적당히 회사가 원하는 수준으로 보여지도록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면접관들도 아주 예민하게 트레이닝이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30분 정도의 짧은 시간 안에 그 사람의 속내를 파악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몇 번이나 구직자들과의 상담에서 받은 이미지와 시간이 지나 친해진 다음에 받는 이미지가 전혀 다른 것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짧은 시간의 이미지 조작에 현행의 면접 방법은 무력한 경우가 많다.
겨우 어렵게 뽑아놓았더니 들어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두겠다고 나서면 회사로선 입장이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간 들어간 비용 역시 만만치 않고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또 다시 뽑아야 하는데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불완전 취업, 즉 잠재 실업과 같은 뜻으로 일정기간의 취업일수, 하루의 취업시간, 소득 등이 표준 수준에 미달하여 전직이나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상태인 경우에 있는 구직자들을 조사한 잡 코리아의 발표내용을 보면 구직자의 27.7%가 어떤 이유로든 취업상태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면접 때 ‘죽도록 열심히 일 하겠다’라는 구직자의 결의는 그다지 신뢰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말한다.
사내 추천이나 믿을 만한 사람에 의한 소개 혹은 서치 펌을 통한 추천은 바로 이런 점에 대해 일종의 '보증(guarantee)'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회사에서는 추천에 대해 보상까지 해 주는 곳이 있다. G마켓, 한국HP, 야후코리아, 그리고 안철수 연구소 등이 대표적인 곳으로, 적게는 5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 원선까지 채용이 되는 경우 소개자에게 포상금, 혹은 사례비의 형태로 지불되고 있다.
직업현장에서 이러한 인맥을 통한 채용 얘기를 할 때, 위의 사례와 같이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분은 사실 많지 않다. 대개는 아래의 두 가지 형태의 반응을 보이곤 한다.
첫째는 취업에 도움을 줄 만한 인맥이 많지 않다는 반응이고, 둘째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오픈되는 정보만 활용하고 싶다는 반응이다.
첫째 이유인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인맥이 많지 않다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인맥의 가치를 자기와 직접적인 인연이 닿는 경우만으로 한정시킨 탓이 크다. 그러나 인맥은 실제로 ‘한 다리’ 건너서 활용도 가능한 것이다.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가 1973년 미국사회심리학저널에 발표한 '약한 고리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는 논문에서는 ‘약한 연결고리(weak tie)’가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 연구에서 취업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인맥을 주로 활용한 경우가 많았는데, 특이한 것은 보통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가까운 사이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 취업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그 이유로 친한 사람들이 가지는 정보는 대개 자신과 비슷한 채널의 정보일 가능성이 많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는 자기와 다른 영역의 새로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서 기인함을 들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전체 취업 성공자 중 56%가 인맥을 통해 정보를 얻어 취업에 성공했고, 그 중 약 80%는 약한 고리를 통해 취업했다고 한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 활용을 못할 뿐이지 잠재적 지원군은 의외로 도처에 널려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실 더 문제가 심각한 것은 둘째 이유이다. 한국 사람들은 원래 청탁이란 이미지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중년 남성의 경우 ‘옳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정서적 대중성이 아닐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청탁이라는 표현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잘못 사용되었다. 오히려 구직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상황을 알린다’는 개념 쪽이 더 정확하리라 본다. 이것을 무조건 부도덕한 취업청탁쯤으로 몰아간다면 이것은 한번쯤 재고가 필요한 편견이 아닐까 한다. 만약 자신이 그 일을 할 만한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상황을 알리는 것(가능하시면 한번 연결해 달라는 암묵적 부탁일 수는 있다)’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야말로 맞지 않는 자리에 자신을 우겨넣으려 하는 시도일 수 있는 것이고, 보다 적절한 다른 사람을 억지로 밀어내는 격이 될 수 있으니 비리에 가깝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면접을 통한 적절한 인재의 판단은 그 신뢰성이 떨어진다. 이럴 때 정말로 나를 아는 이가 나의 능력을 신뢰해 소개나 추천을 한다면 이것은 분명히 기업입장에서도 개인에게도 순기능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잘만 해낸다면 회사로서도 수고를 덜고 좋은 인재를 고르는 것이고, 당신에게도 역시 번거로운 수고를 줄일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현장에서 만나는 분들 중엔, 인맥 활용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면서도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시는 분들도 있다. 참 아쉬운 일이다. 도대체 회사가 그 분을 어떻게 알고 그 능력을 믿어줄까? 어차피 이력서를 받아 보면 대동소이한 역량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면접에서도 차별화 되는 인재는 흔히 보기 어렵다.
컨설팅 현장에서 봐도 분명히 역량이 있어 보이는 분인데, 아쉽게도 나이는 많고 이력서상 경력은 차별화가 되지 않아 계속 서류에서 떨어지던 분이 지인의 우연한 소개로 바로 면접에 투입돼 그 역량을 인정받아 채용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역량’의 문제일 뿐이다. 그 과정을 다양한 루트로 찾는 것일 뿐, 무능력한 경우가 아니라면 도덕적 문제를 논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인맥은 실제 고용시장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70%가 활용하는 방법이다. 또한 연령대가 있는 분들이 훨씬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2009년 7월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활용한 일자리 탐색 방법과 취업성과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40대 남성의 경우 63.7%가 인맥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실제 잠재된 부분을 생각한다면 거의 70% 정도는 이러한 방법을 활용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이 분석결과는 그 중에서도 사회적 인맥의 활용이 가장 효과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이 부분을 포기한다면 당사자는 70%의 취업 가능성을 배제하고 들어가는 것이다. 뿐인가? 그 분이 중장년층이라면 이제 젊은이들과 30%의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이러한 비율은 더 심화된다.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임원급의 외부채용은 온라인 등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이 그 예이다.
그 외에도 사회적으로 저변이 넓지 않은 몇몇 특정 직업들의 경우는 대부분의 구직이 소개나 추천만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든 싫든 인맥의 활용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 좋지 못한 ‘백 그라운드(Background)'에 의지한 채용관행이 있음을 부정하진 않겠다. 대체로 그런 경우는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자격이 되는 이를 제치는 경우가 있으니 이는 분명히 옳지 않다. 결국 옳고 그름에 대한 양심적 판단은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모든 추천과 소개를 부정행위처럼 보는 생각은 조금 바뀌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정직한 사람’이라서, 혹은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서 ‘상황의 전달’조차 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자신의 능력껏 움직이면 된다. 단, 이때는 절대로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을 탓하지는 말자. 어쨌든 그건 본인의 선택이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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