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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영의 뷰포인트

오늘은 아이가 없어졌다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1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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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이가 없어졌다. 다행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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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출근시간이었다.

나는 교대에서 전철을 갈아타는데, 교대 지하철역을 내려가는 계단에 한 소년이 앉아서 구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가끔씩 그 아이를 보곤 하는데, 늘 이해가 안 되는 건 그 추운 계단에 아이가 그냥 멍하게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 앞엔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가 있었고, 얼마간의 돈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힐끗 돌아봤더니 아이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초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아무리 봐도 정상인 표정이 아니다. 하기야 이 시간(아침 7시가 채 안된 시간)에 아이가 지하철 계단에서 구걸을 하는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기분이 언짢았지만 그냥 지나갔다.

 

그 후로도 가끔 그 아이의 모습을 봤다. 매번 나오는 것은 아니고, 가끔 2~3일씩 나오는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아이의 자발적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오늘도 그 아이를 봤다. 무심히 다시 나는 내 속의 ‘무언가’를 눌러가며 지나쳤다. 티켓팅을 하고, 지하철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침 눈앞에 ‘1388’이라는 청소년 상담전화가 눈에 띄었다.

손에서 만지작거려지는 핸드폰, 왠지 전화 한 통 정도는 걸어야 될 것 같다는 알 수 없는 죄의식과 ‘왜 내가 굳이?’라는 귀찮음과 불편함이 다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든 생각 하나, ‘만약 내 아이가 저렇게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면....?’ 이라는 생각, 그리고 마침내 핸드폰을 눌렀다. 다행히 그 이른 시간에도 누군가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저, 여기는 교대역인데요, 가끔씩 초등학생 정도 또래로 보이는 애가 동냥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면 지하철 역사를 관리하는 분께 얘기해서 이쪽으로 다시 전화하게 해주세요.”

 

고맙게도 내게 더 이상의 수고를 요구하진 않는다. 이미 지하철은 한 대를 그냥 보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역사 호출을 누르니 ‘잘못 들어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게이트가 열렸다는 소리만 자꾸 난다. 어렵게 ‘할 얘기’가 있음을 전하니 한 분이 나오신다.

자초지종을 전하니, 약간 뜨악한 표정이시긴 한데, 한번 알아보겠단다.

1388로 전화하란 당부와 함께 급히 지하철을 올라탔다.

 

아마도 내 양심의 두께는 그 정도 까지였던 듯하다.

(여기까지는 르포)

 

(여기서부터는 썰렁시리즈)

이틀 후 교대역을 지날 일이 있어 역무실을 굳이 찾아갔다. 왠지 아이가 잘 보호시설에 인도되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역장님으로 보이는 분 말씀이 “그 사람, 애가 아니고 성인이었어요. 좀 작긴 했지만.... 그런 경우는 저희도 방법이 없어요.”

 

나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나는 머쓱해졌다. 작은 체구에 옷 속에 묻혀있던 사람을 너무 어리게 본 것이다. 거기다 얼굴이 퉁퉁 부은 상태였으니...그나저나 웬 썰렁시리즈.....???!!!

 

어쩌면 ‘이게 뭐야?’ 할 얘기를 굳이 블로그를 통해 올리는 건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거북이는 왜 달리기를 했을까’란 책에서 작가 김경집은 강의를 통해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던진다.

 

[내 자식이 공부 잘하고 말썽 없이 좋은 대학 가서 성공한들 뭐해요. 그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온통 정의롭지 못하다면 참다운 삶을 살 수 없지요. 진정 자식을 사랑한다면 그가 살아갈 세상이 정당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이것이 바로 ‘정의의 연대’입니다. 한 개인이 아무리 의로워도 사회가 그것을 외면하면 아무 소용없어요.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억압받거나 이른바 ‘루저’가 되기 때문에 손가락질 받기 십상이죠. 그러나 참되고 옳은 건 누구나 원해요. 그걸 사회적 약속으로 이끄는 힘이 바로 연대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못된 것에 대해 함께 반응을 하지 않으면 정의란 각자의 편리와 무심함 속에 묻혀 버리고 사회는 점점 혼탁해 진다는 것이다.

아침의 교대역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갈까?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소년이 한 겨울에 퉁퉁 부은 얼굴로 동냥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을 쓰는 이가 없다.(어쩌면 나만 바보라서 그 사람을 아이로 착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좋겠다.)

TV속에 나오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외침이 아주 많이 싫다. 우린 이 사회의 불행에 누구라도 동참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세상이 아니던가. '언제까지 나만 아닐 수' 있을까?

 

이 땅에서 아이를 키울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한국을 떠난 친구를 탓할 수 없다. 나 역시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들리는 소식에 가끔은 끔찍하다. 이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두려울 만큼...

 

그 시답잖은 전화 한 통 하면서, 나는 또 왜 그렇게 망설였던 것일까? 혹, 그 사람의 얼굴에 내 아이가 오버랩 되지 않았어도 나는 그 전화를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정말 얼마나 차갑고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그 세상에서 나는 얼마나 또 얼마나 매일 냉기를 더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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