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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시니어 컨설팅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자, 유죄!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09.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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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내가 이렇게 빨리 나오게 될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니 솔직히 지금은 배신감만 듭니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꾸 세상에 대해, 내게 대해 화만 납니다.

영국의 경영사상가인 찰스 핸디는 그의 책 ‘코끼리와 벼룩’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우리들이 다섯 살이 되기 이전에 발생한 테크놀러지의 변화는 하나의 규범으로 정착된다. 서른다섯 이전에 발생한 테크놀러지는 우리를 흥분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그러나 서른다섯 이후의 테크놀러지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난처하게 한다.’

‘정신없다’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변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이만큼 명쾌하게 설명한 문장이 또 있을까?

언제부턴가 우리 시대에서 ‘변화’는 인간세상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기업경영에서도 혹은 개인들의 삶에서도 ‘변화’는 곳곳에서 자의건 타의건 간에 각자의 삶에 개입하여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당연히 직업세계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아니 변화에의 대처는 그 성공적 대처여부에 따라 다양한 삶의 변주를 만들어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직업이란 것 역시 마치 유기체인 생물마냥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때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도 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수는 또 새로이 지금도 생성되고 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많은 누이들이 버스 차장(안내원) 일을 맡았던 기억이 있지만, 언제부턴가 그 모습은 마치 원래부터 당연히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마도 버스운전석 옆에 부착되는 요금기와 뒷문에 대한 자동개폐장치가 원인이었던 듯한데, 한동안 ‘그 많은 누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이렇듯이 직업의 변화는 소리소문 없이 우리네 삶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친다.

어디 그들 뿐일까. 대표적인 감소직업의 하나인 은행의 창구직원들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이 경우는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점점 더 속도를 낼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많은 창구직원들이 ATM(무인현금자동출납기)으로 인해 자리를 잃었는가.

사라지거나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거나, 또는 대폭적으로 줄어들거나, 혹은 듣도 보도 못한 일들이 생성되는 세계에서는 직업의 선택 시 한번쯤 그 직업의 장래 시나리오를 그려 볼 필요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L씨는 미싱장비를 고치는 기술자 겸 영업을 하는 기술영업자였다. 제법 큰 회사에서 미싱관련 장비를 유지하고 수리하는 일이 그의 몫이었고 그런대로 유지가 되는 수입에 평범한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4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서 그는 자신의 자리를 잃고 말았다. 가계용은 물론, 공업용까지 점점 더 축소되는 일자리에 결국 버텨내지 못하고 밀려나고 만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 자신이 아무리 스스로의 분야에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특별히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전혀 새로운 미싱 관련 기계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아주 특별한 노하우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기존 자신이 하던 일은 어느 정도의 업무경험만 있으면 누구라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는 일이었다. 관련 회사는 적었고, 개인적으로 독립해서도 자신의 기능을 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퇴직을 하고 나서야 자신의 일이 얼마나 세상에서 점점 생존력을 잃어가는 것인지 확연히 깨달은 그는 당혹해 했다.

결국 다른 기술영업 관련 분야를 찾았지만 기술영업의 특성상 완전히 자신이 종사했던 분야가 아닌 한 이직은 그다지 쉽지 않았고, 아주 오랜 시간동안 그는 방황을 해야 했다.

사양산업, 사양직업에 대한 예측은 그래서 더 필요하다. 특히 한 직장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기술은 위험하다. 범용성이 없는 기능, 혹은 역량이란 그 회사를 떠나면 생존력을 잃는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근로자는 필요 이상으로 그 회사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받쳐야 한다. 하지만 그 회사가 언제까지 자신을 책임져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열심히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시대는 과거의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술적 변화의 대표적인 문제현상 중에는 고령자층의 컴퓨터 활용능력과 관련한 문제도 있다. 한때 잘 나가던 회사의 임원급 중에서도 가끔 자신의 이력서 하나 컴퓨터로 작성해내지 못하는 분을 볼 때가 있다.

그 분의 말씀처럼, ‘뭐든 아랫사람을 시키면 다 되는’ 상황에서 지내다 보니 자신의 경쟁력은 도외시하고, ‘아랫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역량’만 키워 온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을 떠나 무엇이든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런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 된다. 때로는 완전히 시대의 흐름을 놓치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회에서의 뒤쳐짐을 막기 위해서는 마치 신입사원 때와 같은 열정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러기에는 스스로의 몸에 낀 ‘과거라는 녹’이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이런 경우 왕도는 없다. 나이가 얼마가 되었건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내가 고용주라면’ 컴퓨터로 이력서 하나 만들지 못하는 사람에게 회사의 중책을 맡기겠는가? 혹시 그건 다른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건 당신의 희망일 뿐이다. 어떤 오너도 세상에 대한 감각을 놓친 사람에게 회사의 중요한 역할을 맡기진 않는다.

컴퓨터의 사용 이면에 있는 본질적 문제가 결국 더 발목을 잡는 것이다.

기술적 변화도 문제지만 ‘개인적 변화관리’란 영역은 흔히 개인적 직업문제로 발생되곤 하는 영역이다.

K씨는 잘 나가던 외국계 기업의 임원이었다. 50대에 접어든 그는 한 때 잠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기도 했으나 일단 정년까지는 무사히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당시의 편한 직장에서 무언가 다른 대안을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빨리 다가 온, 반쯤은 강요된 명예퇴직이란 현실 앞에 거의 1년 이상을 분노에 젖어 시간을 보내야했다.

50대 이후 퇴직한 임원에게 1년의 공백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잘만 관리했다면 헤드헌팅 회사나 인맥을 활용해 한번쯤은 ‘쓸 만 한 직장’을 더 다닐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 1년이란 공백이 뼈아팠다. 더 심각한 건 그 1년의 공백 속에 쌓여 온 분노와 부정적인 마인드였다. 거기에 과거의 잔영까지 깊숙이 남아 있어 K씨의 공백은 길어져야 했다.

반면에 자신의 미래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멋지게 개척해낸 케이스도 있다. 하영목 박사는 한국의 면접과 코칭 분야에서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계신 작가 겸 교수이자 커리어 코치이다.

그는 지속적으로 회사생활을 통해 자신의 전문분야와 브랜드를 만들고 노력해 오다, 50대 초반에 결국 이후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판단에 억대 연봉의 외국계 기업 임원자리를 박차고 나와 HR 분야로 뛰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시했지만 현재 그는 HR분야의 전문가로 시장에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변화의 최대 적은 ‘만족스런 오늘’이란 말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오늘 이 순간이 너무 만족스러우면 사람은 스스로의 발전에 대해 노력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점에 있을 때야 말로 이젠 ‘내려감’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단지 그러한 자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최근 몇 권의 책을 통해 소개되며 화제를 모은 단어 중에 ‘베네펙턴스(Beneffectance)'란 단어가 있었다. 이는 바람직한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을 관련짓고 그렇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과의 관련성을 회피한다는 것인데, 우리 식으로 하면 ‘아전인수(我田引水)’쯤 될 듯하다.

예를 들어 한 업체에서 ‘자신이 핵심직원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해 직원들은 50% 이상 그렇다고 한 반면, 회사는 단지 그 중의 20% 정도만을 핵심인재로 꼽았다는 설문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일종의 베네펙탄스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결국 개인들은 스스로를 중요한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어느 날 전혀 준비하지 못한 퇴출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당연히 그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지만 거기에만 천착하다가는 정말로 자신을 망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변화’를 놓치게 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앞에서 언급한 ‘만족스런 현재’ 외에도 나는 두 가지를 더 꼽고 싶다. 그것은 ‘삶의 관성’과 ‘외면하고픈 현실에 대한 반작용’이다.

물리학은 잘 모르지만 삶에도 익숙함이 만들어내는 관성이 있다. 늘 행해오던 것을 하며 그냥 지내는 것이 새로운 것을 찾아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보다 훨씬 평온하고 쉽다.

때로 그 관성은 힘든 현실 속에서도 존재한다. 마치 자영업을 할 때 가게 매출은 떨어지고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가게를 정리할 엄두는 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인간의 현실 적응력이 때로 얼마나 부정적인 상황으로도 잘 적응하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흔히 이런 심리의 이면에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어떻게든 살아는 내지만 변화를 통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바로 어제와 같은, 혹은 어제보다 힘든 오늘의 인내만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에 비해 ‘외면하고픈 현실에 대한 반작용’은 ‘두려움’에 기인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후준비이다.

대한민국에서 노후생활이란 변화를 맞이했을 때 제대로 준비를 하고 생을 구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대체로 재무설계사들을 통해 얘기되고 있는 노후자금의 규모는 현실물가를 반영하면 최저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으로도 60대 이후 20년을 예상할 때 7억원 정도의 금액은 필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7억원이라... 사실 나 역시 이런 계산을 통한 얘기를 들을 때마다 답답해지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과연 이 정도 수준의 노후자금을 대비하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2007년 동아일보의 한 조사를 보면 비교적 잘 산다는 수도권 기준의 퇴직자의 평균 재산은 퇴직 시 2억~2억 5천만원 정도라 했다. 지금의 상황이 2007년에 비해 과히 나아진 것도 없으니 여전히 그 수준 인근일텐데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떻게 메워야 할까?

그래서일까? 정년퇴직을 눈앞에 두고도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이들은 만나기가 어렵다.

우리가 ‘변화’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들 대부분은 결국 ‘답을 구할 수 없기에’에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변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이젠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늘 현장을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현장에서 무엇이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각자의 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평생 대비할 수밖에 없다. 무지했다고 면책이 되는 세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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