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
변화경영사상가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던 구본형 선생의 신화에 대한 애착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꽤 유명한 이야기다.
언제부턴가 변화 속의 개인의 자기계발과 기업의 경영을 얘기했던 그는 자기경영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고 이를 신화 속의 이야기들을 통해 풀려는 노력을 해왔다.
아마도 그가 그토록 인정해마지 않았던 비교신화학자 죠셉 캠벨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 상세함까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책을 집어 들면서도 통상적인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글쓰기가 어지간해선 ‘통속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그리스 신화를 이렇게 종과 횡으로 연결하며 인간의 다양한 모습, 그리고 그 속의 시인을 빌은 話者(아마도 구뵨형 선생 자신)를 통해 감각적인 축약을 하는 솜씨는 탁월하다.
무엇보다 일반적으로만 알고 있던 그리스 신화를 꽤 깊이 있게 다루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 삶의 과정은 일종의 영웅으로 가기 위한 시련의 과정임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시험을 기꺼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가기를 권해온다. 이제 우리도 자신의 신화를 위해 떠남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지난 토요일(2013년 4월 13일) 우리는 꽤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멘토의 모습을 보여줬던 한 지식인을 잃었다. 그는 지식인이었고 실천자였고, 개척자였다. 비록 가까이서 그를 본 경우는 한 두 번의 기억밖에 없지만 ‘낯선 곳에서의 아침’,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등을 시작으로 어려운 시절 내게 지표가 되어주었던 사람이다.
많은 이들의 그를 추억하니 아마도 그는 다른 세상에서 그다지 외롭지는 않으시리라. 혹시 아는가? 그토록 그가 좋아했던 신화와 詩의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
다행히도 지난 1월의 어느 날, 그에게 이런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좋은 영향을 받았고, 삶을 지나오는데 의지가 되었습니다. 한번쯤은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쉽게도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은 내 불찰로 날아갔지만, 여전히 그의 빛나고 당당했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내 뇌리에 남아 있다. 그는 60세에도 여전히 빛나는 청춘이었다.
“50살이 되던 날 아침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앞으로 50대의 10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지난 10년을 회고할 때 참 잘살았다고 생각할 만한 열 개의 장면이 있다면 그게 뭘까? 일단 1년에 한 권씩 책을 쓰는 일입니다. 열 권의 책을 끊임없이 쓰는 저자가 되자. 둘째는 나만의 방식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내자. (중략) 그리고 좀 더 많은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다. 일 년에 두 번은 열흘 정도씩 긴 여행을 가겠다. 이런 다짐 열 가지가 있어요. 그일 외의 다른 것에는 시간을 쓰지 않았더니 내가 바라는 삶에 가깝게 살 수 있더라고요.”
(2013년 4월 13일 폐암으로 별세, 故 구본형 소장의 2012년 9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음에 남다>
- 위대한 문명조차 칠흑 같은 원시를 품고 있다. 모든 문명은 모두 원시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p.11)
- 이 시대는 신사적이고, 관대하고, 절제하고,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하고 용감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었다. 술고래에 거짓말을 하고 살인을 하고 배신을 하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비겁하고 소심하며 나약한 인간이 나쁜 사람이었다.(p.13)
- 탈레스와의 문답 중에서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 “당신 자신을 아는 것”
“무엇이 가장 쉬운가?”, “조언하는 것”
“신은 무엇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
“가장 가치 있고 정의로운 삶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을 비난할 때 그 비난당한 삶을 스스로 살지 않는 것”(p.16)
- 시인의 노래 중에서
어제, 또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날들,
고용한 일상의 호수에 문득 돌멩이 하나
다른 운명이 여울져 찾아온다네.
어리석고 위험한 젊은이 하나가 불행을 찾아 떠나네,
그것이 젊음이기에(p.39~40)
-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The Way it is> 윌리엄 스태퍼드
네가 따른 한 가닥 실이 있지.
변화하는 것들 사이를 지나는 실.
그러나 그 실만은 변치 않아.
사람들은 네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궁금해 하지.
너는 그 실에 대해 설명해야 해.
그렇지만 그 실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
그 실을 꼭 잡고 있는 한, 너는 절대 길을 잃지 않아.
살다보면 슬픈 일도 일어나고,
사람들은 상처를 입거나 죽기도 하지.
너도 고통 받고 늙어갈 테지.
네가 무얼 해도 시간이 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어.
그래도 그 실을 꼭 잡고 놓으면 안 돼.(p.92~93)
- 시인의 노래 중에서
모든 영웅이여, 미궁으로 들어서라
‘나를 지나면 슬픔의 도시로 가는 길
나를 지나면 영원한 슬픔에 이르는 길
나를 지나면 길 잃은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길'(단테의 신곡 중 지옥문에 쓰여 있는 글귀)
그 길을 통과하라
아리아드네여 실타래를 결코 잊지 마라.
희미한 소명의 길은 미궁과 같으나
어두운 내면을 통하지 않고는 내가 없으니
두려우리라 생각한 곳에서 나를 발견하고
우리가 생각한 곳에서 살게 되리라.(p.97~98)
- 시인의 노래 중에서
현실을 아는 자들은 신이 그에게 허락한 것을 즐길 줄 알고,
그 천직의 즐거움이 삶임을 믿는다.
일 외에 다른 더 큰 즐거움이 없을 때
일은 놀이가 되나니.
운명을 따르라. 투덜거리지 마라.
그러나 높은 하늘을 지나는 바람은 수시로 그 행로를 바꾸니
무엇이 운명인 줄 어찌 알겠는가.
다만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릴 뿐.
(중략)
자신의 일을 하다 죽기 바라네.
태어난 운명대로 길을 가고
그 길 위에서 늙으리니.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천직이니
천직을 다한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되나니.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그만두고,
평생 가야할 길로 들어선 자는
황금의 시기를 맞이하리니
그들에게 퇴직은 없다.
죽음이 바로 퇴직이므로.(p.154~155)
- 시인의 노래 중에서
인간은 이 운명에서 저 운명으로 부름을 받는 것,
부름이 끝나 한 곳에 머무는 순간
삶은 저녁처럼 저문다.
그러니 풍랑과 폭우를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떨림의 기쁨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니.
풍랑이 내던져놓은 새로운 운명의 해변에서
폭우가 지나간 하늘은 다시 푸르게 살게 하나니.
모든 죽음은 영원한 평화, 그러니
살면서 아무 일 없는 무풍의 권태를 참지 마라.
떠나지 못한 모험은 삶에 대한 쓰라린 모독이니.(p.390~391)
- 자기 경영의 요체는 왜곡되고 강요된 껍데기의 삶을 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며 모색이다. 나의 세계를 찾아내 그 주인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자기 혁명인 것이다.(중략) 신화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가 어느 날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특별한 역할과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자각하고는 시련과 고난을 이기고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법을 수련하여 드디어 평범한 사람은 결코 해낼 수 없는 과업을 성취하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힘을 가지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게 되는 이야기다. 신화란 그 이야기 속에 자기 혁명의 진수와 핵심을 뼈와 살고 품고 있는 비서(秘書)임을 알게 된 것이다.(p.450~451)
- 나는 삶을 시처럼 살다 가고 싶다. 책이 보고 싶으면 책을 즐기고, 비가 내리면 비를 즐기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걷고,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자식을 낳아 그들이 커가는 것을 보고, 내 세계 하나를 만들어 그 속에서 사람들과 삶의 기쁨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는 살아 있음의 흥분과 떨림이 중요하다.(중략)
시인의 노래 중에서
꿈 속 미풍에 실려 온 홀씨 하나
땅에 묻히더니 이내 종려나무 싹이 되었네.
우듬지(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가 쑥쑥 하늘을 향해 커가더니
어느새 머리가 별에 닿았네.
머리카락에 별을 잔뜩 달고 내려다보네.
문득 내 속에 울리는 <파우스트> 속 외침.
“저 문을 열어젖혀라. 사람마다 통과하기를 주저하는 저 문을.”
푸른 바다를 향한 열망이 나를 이미 선원으로 키웠으니
나는 독에 매어둔 배를 올라 묶어둔 줄을 풀고
두려움과 기쁨으로 가득 차 바다로 나서네. 나의 세상을 찾아서.(p.451~452)
(구소장님과 찍었던 사진을 날린 관계로 변화경영연구소 사진을 옮깁니다. 생전에 참 좋아하셨다는 사진인데, 그분의 이미지와 참 어울립니다)
▶ 삼가 故 구본형 선생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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