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루는 흘러갑니까? 아니면 쌓여갑니까?
두 젊은 직장인이 있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친구는 다른 회사, 다른 부서에 배치가 되었지만 생활의 방식이 판이하게 달랐다.
A는 전형적인 신세대였지만, 또한 전형적인 신세대의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감각도 있고 빨랐지만, 일이 많은 것을 싫어했다. 그에게 직장은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돈을 버는 곳일 뿐 그보다는 여행을 다니고 즐기는 생활에 더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당연히 과외로 주어지는 일이나 갑작스런 프로젝트는 스트레스만 만드는 것이었고, 어떻게든 그 일들을 ‘쳐내기’ 바쁜 생활을 했다.
그의 이런 태도에 일은 조금씩 줄어 간명해졌지만, 새로운 것을 위한 배움이나, 자신을 위한 발전의 여지는 회사에서 만들어질 것이 없었다.
B는 좀 달랐다. 그는 애초에 회사에 들어 온 목적이 몇 년간 일을 배우고 자신이 생각한 꿈인 창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일은 돈을 받고 하는 수련의 장이었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차근차근 자신의 것을 누적시켜 갔다. 인맥도 넓혀야한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러 뛰어다녔고, 그 인연들이 일과성이 되지 않도록 공을 들였다. 모두가 사업을 시작하면 나를 도와 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정성을 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틈이 나는 대로 전체적인 일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타부서까지 기웃거리는 열의를 보였다. 그의 평판은 올라갔고, 그와 함께 점점 중요한 일들이 맡겨졌다. 당연히 일에 대한 그의 실력 역시 점점 업그레이드되어 갔다.
5년이 지났다. A와 B는 모두 결과적으로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그 양상은 전혀 달랐다.
A는 주변과의 마찰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퇴직을 종용받다시피 하며 회사를 나가게 됐다.
그에 비해 B는 회사에서 몇 번이나 잡으려 했지만 자신의 큰 꿈을 위해 더 크고 배울 곳이 많은 회사로 스카웃되어 옮기게 됐다. B는 이미 자신의 꿈이라는 영역에 성공적으로 한 발을 올려놓은 것이다.
똑같은 급여를 받고, 비슷한 역량의 기대치를 가졌던 이들의 삶이 왜 이렇게 갈라진 것일까? 누군가는 목표의 차이라 하고, 누군가는 태도이 차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보낸 하루하루에 사람들의 시선이 맞춰지길 바란다. 누구나 꿈은 꾸지만, 그 꿈을 실현해 내는 것을 ‘하루를 잘 보낸’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들은 그것이 어떻게 보내졌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누군가는 그 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쌓아간다’. 대개 흘려보내는 이들은 한편으로 나쁜 것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이들은 흔히 자신의 24시간이란 것에 가치를 부여할 생각 따위는 거의 하지 않고 보낸다. 무언가 더 나아지게 하거나 새롭고 특별하게 만드는 행위는 그들의 머릿속엔 없다. 이런 삶은 어쩌다 행운처럼 좋은 것이 올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개 스스로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하루는 그냥 주어지면 쓰고 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하루는 가까이 있는 것이고 귀한 것이지만 신경 쓰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독특한 존재다. 흔히 보이지 않지만 늘 함께하는 존재들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잘 깨닫지 못하고 홀대하기 쉽다. 사람들에겐 하루라는 일상이 그렇다.
내가 참 좋아하지만, 또한 무서워하는 말 중에 ‘Karma’란 단어가 있다. 우리말로는 행위 혹은 업(業)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인과관계와 이어지는 이 단어는 결국 과거의 행위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의 행위가 미래를 만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Karma의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적어도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는 ‘쌓이는 것’에 가깝다. 오늘의 하루는 내일을 위한 기반으로 내 삶에 쌓인다. 심지어 내가 무심코 흘려보낸 하루조차도 어떤 의미로든 누적이 된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쌓이는 것이다.
한동안 인터넷에 화제가 됐던 홍보대행업체 프레인의 여준영 대표의 ‘인생은 종량제’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 조금씩 행하는 노력들은 그 순간 보면 모두 작은 티스푼으로 수조에 물을 떠 담는 것처럼 미미하고 답답하지만, 어떻게든 결국 쌓이게 되고 그 노력들의 합이 우리 삶을 결정한다는 얘기다. 참 적절하고 무서운 비유다.
‘쌓여가는 하루’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삶을 결코 쉬이 흘려보낼 수 없게 된다.
예전 모 대기업에서 생산직 직원을 모집하는 경우가 있었다. 생산직이라도 초임이 어지간한 지방 중소기업의 과차장급 임금에 회사의 복지가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다보니 많은 지원자가 생산직 모집 위탁교육에 참여했었다. 심지어 과정에 대한 최종시험까지 진행을 했었다. 6개월의 교육이 끝나고 면접에 참여할 수 있는 합격자가 발표되자 다수의 참여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합격자는 최종적으로 시험점수를 높게 받은 지원자가 아니었다. 시험은 최소한의 기준을 시험하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다. 면접 참여의 기회를 얻은 이들은 6개월의 교육기간을 성실하게
임했던 자, 이미 지원 이전의 시기에 성실한 과정의 징표를 만들어 왔던 이들이 그나마 면접기회를 얻었고 그 중에서도 더욱 성실한 몇 명만이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자신의 하루를 그다지 진중하게 살펴 볼 이들은 많지 않다. 많은 것을 이해하고 세상을 보는 눈은 넓어진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이나 시간, 추상적인 것들을 보는 눈은 오히려 약해진 것이 요즘 젊은이들이다. 그들이 쌓아가는 하루의 소중함 역시 그 나이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쌓아 온 것들의 실체를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진학현장에서, 취업현장에서, 혹은 결혼과 같은 개인적인 변화의 시기에 그 ‘누적’들은 부정하기 힘든 결과로 다가온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만든 누적된 하루들의 영향력 속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곧 경력이 되고, 그 사람이 살아온 평판이 되기도 한다. 삶은 연속성이다. 쌓여 가는 하루는 그래서 무섭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그럼 이미 지나온 것은 손댈 수 없으니 이제 저는 틀린 건가요?” 당연히 아니다. 누구나 또 다시 만들어 갈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만 미래는 오늘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편없는 과거로 인해 오늘을 절망 속에 산다는 이들은 결국 미래에까지 그 절망을 연장하는 ‘오늘의 선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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