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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영의 뷰포인트

우리는 터널을 지나 온 걸까?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09.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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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회복에 관한 얘기들이 일각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아직 이른 얘기라고 한다.
어떤 것이 진실일까?
나는 경제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일하는 현장에서 가장 민감하게 고용의 체감온도를 느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온도는 아직 차갑기만 하다.



한국사회가 경제위기로 인한 초유의 경험을 하게 되었던 IMF는 실제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그 상징성이 컸다. 특히 직업세계 혹은 고용시장과 관련하여 거의 혁신적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이다.

사실상 가족 같은 회사의 이미지가 확실히 붕괴된 계기가 된 시기였고, 이후 고용조정, 명예퇴직이란 말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갑작스런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야 했고, 이런 상황은 중산층의 붕괴라는 또 다른 사회현상으로의 파급을 만들어 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을 너무도 빨리 극복해 낸 것처럼 보였다.(정말 너무도 빨리...)

그런데 우리들의 기억 속에 마치 엊그제쯤 왔다간 것 같은 IMF의 기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몇몇 개발도상국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위기에 대한 지구촌의 반응은 다양하지만 어느 누구도 쉽게 이 흐름이 단기간 내에 반전될 것이라 예측하지는 못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직업과 관련해 대란(大亂)이라 표현해도 될 만큼 큰 시련의 시기를 건너고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직업’이란 것은 두 가지 큰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아실현과 생계유지의 두 가지 측면이다. 이 중 자아실현은 자발적인 의지와 관련이 있지만 생계유지는 그 특성상 강제적 구속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보다 깊고 실제 그 의미가 큰 것은 자기존재감의 실현이겠지만, 당장 일반인들이 더 직접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아무래도 생계유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도 21세기 시대에 우리는 누구도 두 번째 가치, 곧 생계까지 위협받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자아의 실현이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일부 사람들만이 찾아가는 쉽지 않은 인생경로였기에 누구나 누리긴 힘든 것이라 쳤어도 이렇게 자본주의가 발달해 가는 세상에서 우리 주변에 자꾸만 생계차원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현실은 분명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선진국 진입을 논하던 우리 현실에선 예상치 못한 것이다.

최근 노동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인구 1천600만 명 중 309만 명이 월 소득 88만원에 못 미치는 '근로 빈곤층'이라고 한다. 이른 바 일을 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워킹 푸어(Working Poor)'다.

문제는 이런 빈곤층은 갈수록 느는 반면 중산층의 숫자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2006년 나온 조사에 의하면 전국 가구 가운데 가구주가 무직인 가구의 비율은 14.57%로 밝혀졌는데, 이는 일곱 가구에 한 가구꼴로 가장이 무직 상태란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공식적인 통계는 잡히지 않았지만 이 비율은 최근 훨씬 늘어났을 것이다.

거기에 빚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가구가 총 가구 수 중에 28%~30%라고 하니 수치로 보는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없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공식 발표된 2008년 말 기준 청년실업률은 7.5%로 전체 실업률(3.2%)의 2배 이상이며, 비정규직 근로자 수는 발표주체에 따라 차이가 심하지만 대체로 500~70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이 통계조차 순수하게 믿기 힘들만큼 우리네 사정은 팍팍하기 이를 데 없다.

다음은 최근 한 신문을 통해 발표된 수치이다.

[기업체 입사나 공무원 시험 등을 준비하는 이른바 취업준비자는 2008년 11월 기준 55만2천명이었고 아프거나 취업이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지만 취업할 생각이나 계획이 없어 '쉬었음'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132만7천명에 달했다.

또 지난 1년 내 구직활동에 나서봤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실망해 더 이상 구직활동에 나서지 않는 구직 단념자는 모두 12만5천명이었다.

실업자(75만명)와 구직 단념자(12만5천명), 취업준비자(55만2천명), 그냥 쉬는 사람(132만7천명)을 모두 더할 경우 사실상 백수는 275만4천명에 달한다.

여기에 현재 일은 하고 있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한 불완전취업자, 즉 반(半)백수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2008년 11월 기준 36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취업 희망자는 41만7천명으로 1년 전에 비해 6만4천명 증가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백수 상태에 놓여있거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한 반백수들을 모두 합하면 2008년 11월 기준 317만1천명에 달해 1년 전인 2007년 11월(300만4천명)에 비해 16만7천명 증가했다.] (연합뉴스/경인일보 12월 15일)

우리나라의 15세 이상 경제활동 가능인구가 약 4천만 정도라 할 때 최근 방송을 통해 발표된 비경제 활동인구(어떤 이유로든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는 1600만 명을 기록했으니 사실상의 실업인구에 더 하면 필자의 지인이 농담처럼 얘기했던 ‘대한민국에선 직업만 있으면 상위 50%에 든다’란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적어도 3%대의 실업률이 발표되는 현실은 실제와 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수치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들이라면 이제 이런 경제위기가 불러 온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살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럴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단한 능력자이거나 엄청난 무신경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다.

사회 일각에서는 그동안 신(神)의 직장, ‘철밥통’이라고까지 비아냥하던 공기업과 공무원이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잡 세어링(Job sharing)’이란 낯선 단어가 난무하고, ‘인턴세대’란 말이 이해가 되며, ‘고통분담’이란 단어의 씁쓸한 추억이 절로 떠오르는 시대다. 당연히 현재진행형의 구조조정을 통한 인원감축은 IMF 시절을 연상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아니 상대적으로 기간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나 나쁜 파급력은 보다 더 강력해 보인다.

단순히 직장인들만 어려움에 처해 있는 것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만 우리나라의 자영업자는 776만7000명이나 된다. 전체 취업자의 33.5%나 된다는 얘기다. 3명 중 1명의 비율은 OECD 국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더 괴로운 현실은 수출 70%, 내수 30%의 국가에서 오히려 반대의 비율을 가진 나라보다 자영업자가 더 많은 기형적 산업구조를 가진 국가가 또 한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1년이면 그 해 창업한 업체 수 대비 거의 90%의 숫자가 또한 폐업을 한다는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청년들은 졸업 후 취업까지 평균 11개월이 걸리고(대졸 7~8개월, 고졸이하 13~16개월), 그나마 입사 후 1년 이내에 52%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이직을 하는 현실, 고령자들은 최저 임금까지 공식적으로 위협받으며 일을 해야 하는 상황, 한 번 임원으로 퇴직하면 사실상 직업으로서의 정년까지 한꺼번에 맞이해야 하는 세상이 오늘 날의 한국에서 맞이하고 있는 직업적 현실이다.

우리 시대의 희망인 ‘안정적 직장’은 이미 유토피아에나 나오는 먼 얘기가 되고 말았다.

실망하고 주저앉아 세상 탓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내가 그런다고 세상이 절대 바뀌어 줄 리 없다. 우리가 토해 낸 불평과 불만은 나를 위해 조금도 세상을 바꿔 줄 수 없다. 다만 나를 망가뜨리는데 일조할 뿐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이력서 한 줄을 더 보태고, 어떻게 살아남을지 빈 백지에 한 자라도 더 미래에 대해, 살아갈 방도에 대해 써 보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는 아직 터널을 지나지 않았다.  경제라는 모델은 어떨지 모르나 현실적으로 각 개인들은 아직 멀고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길이를 알 수도 없는 그곳은 오직 우리들의 역량만이 길을 안내할 빛이 될 시공간이다.

직업은 개인의 삶과 맞물리고 개인의 삶은 철저히 당사자의 ‘생각과 태도’에 따라간다.
오늘 아침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으면 한다. 긴 터널을 준비하는 생각과 태도로 우리는 이 어려운 시간을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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