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
부제가 ‘영혼 있는 직장인의 일 철학 연습’이다. 꽤 타이틀이 화려하다. 일단 내용의 핵심은 흥미 있는 주제다. 우리 시대에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나치게 도입되고 있는 규율과 인센티브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네시스, 곧 ‘실천적 지혜(Practical Wisdom)’라는 주장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요, 유명 저자인 배리 슈워츠는 또한 ‘TED특강’을 통해 실천적 지혜를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이 동영상의 조회 수가 100만 건을 넘었다 한다.(이게 이 분의 대단한 강의 때문인지, 혹은 TED특강의 인기 때문인지 잘 구별은 안 가지만)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전문직들, 곧 변호사, 은행가, 교사, 의료인 등이 자신들이 속한 원래 직업의 목적을 잊고 어느 샌가 경제적 효율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과도한 규율과 인센티브가 사람들을 압박하면서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지혜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오늘날 미국이 처한 각종 현실들을 보여주며,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개인적으로 미국의 교육제도를 비판한 다큐멘터리 영화 ‘웨이팅 포 슈퍼맨’을 참고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더욱 절실히 내용이 와닿을 것 같다.
실제로 한 분야의 전문직을 표방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의 실천적 지혜에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다. 다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본성과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의 흐름 속에서 이러한 시도가 얼마나 대중적인 흐름을 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이 책이 자기계발류의 담론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음에 남다>
- 훌륭한 전문가는 자신이 맡은 업무의 목적에 따라 행동한다. 그렇지만 매우 포괄적인 업무 목적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려면 지혜, 다시 말해 실천적 지혜가 필요하다.(p.18)
-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의 병실을 환자 아버지의 항의에 따라 두 번 청소한 병원청소관리인. (중략) 화가 난 환자 아버지와 마주친 순간 대처 요령을 떠올릴 때, 공식적인 직무 기술서를 참고하지 않았다. 업무 규칙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가 지침으로 삼은 것은 자신이 생각한 업무의 ‘목적’이었다.(p.25~29)
-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실천적 기술에서 특히 중요한 두 가지 능력을 강조했다. 바로 선택지를 숙고하는 능력과 특정 상황에서 도덕성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충분한 숙고와 분별력이야말로 실천적 지혜의 핵심이다.(p.33)
- 단순한 흑백영역이 아닌 특정한 상황이 낳는 미묘한 차이, 즉 회색 지대를 간파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p.36)
- 규율로는 지혜를 대체하지 못한다. (대법관) 카도조는 규율과 법이 아무리 중요하고 도덕적이라 해도 이상향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중략) 따라서 우리 모두는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p.43)
- "의사가 환자와 지나치게 밀착해 고통을 같이하면, 의사는 무엇이 그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환자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등등 정확한 판단에 핵심인 객관성을 잃는다. 고통에 지나치게 공감하면 의사는 판단에 방해를 받거나 심지어 무기력해져서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에드먼드 펠레그리노, 前 미국 대통령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의장. p.58)
- 공감과 거리감을 조율하는 능력은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대상을 조율하는 능력이다. 내면으로는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냉정함’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상반된 감정을 조율하는 능력이야말로 실천적 지혜의 핵심이다.(p.59)
- 공감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다른 사람처럼 느끼려면 세상을 다른 이의 시각에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능력을 갖추려면 통찰력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공감은 사고와 느낌이 통합된 상태다.(p.94)
-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과거와 비슷하다는 인식이 없다면 그 어떤 지식도 불가능해진다. 그렇지만 현명한 판단은 현재 상황이 과거와 ‘꼭’ 같지는 않다는 인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적 규율과 달리 실천적 지혜는 특수성을 앞세우므로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였다.(중략) 현명해지려면 우리는 차이에 무감하지 않으면서 유사성을 알아채는 인지 장치와 지각 장치가 필요하다.(p.112)
- 규율이라는 형식에서 언어가 도덕적 평가와 의사결정의 도구가 되면 규율이 언급하는 상황에만 생각이 고정된다. 가진 게 망치 하나면 다른 모든 사물이 못으로 보이는 식이다. 언어는 일상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대다수 과제에 유용하며 필수다. 그렇지만 언어가 언제나 패턴 인식과 함께하지는 않는다. 또 언어가 지혜의 친구인 것도 아니다.(p.114)
- 언제 어떻게 침묵하고, 또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아내는 지혜가 부족하면 우리는 사회적 관계가 요구하는 경청과 멀어지게 된다.(p.173)
- 의료가 관료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촉박한 시간이 감정이입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감정이입을 유지하고 자극하려는 노력이 사라지고 정교하고 ‘효율적인’ 진단과 치료가 등장하면서 비인격화라는 어두운 면이 생겼다.(p.175)
- 법률회사가 거대한 관료제에 휩싸이면서, 변호사들은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 채 ‘윗사람이나 주변의 눈치’를 보고, 도덕을 개인의 생존 및 이익 추구와 별개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다.(p.189)
- “맡은 임무에 적합하게 의사 결정하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만큼 젊은 장교와 하사관의 지도력을 효율적으로 없애는 방법도 없다.” (프레더릭 크로에센 전직 미군 대장, p.200)
- (교육에 있어서) 조만간 올바른 답을 내뱉는 아이를 나사나 타이어의 휠 캡을 만들 듯이 ‘찍어내는 일’이 일반적 관행으로 자리 잡을 분위기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모습이 ‘최상의 관행’처럼 여겨지는 현실이다.(p.213)
- 벌금은 도리로 여기던 인식에서 도덕성을 제거했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 인센티브가 낳는 효과다. 인센티브가 생기면 사람들은 “이 행동이 옳은가?”라는 질문 대신 “그 가격은 적당한가?”라고 질문한다.(p.223)
- 아이들에게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1점씩 점수를 주고 점수가 쌓이면 상을 주는 (강화)기법을 사용한 학교의 경우: 놀라울 만큼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래 책 욕심이 강했던 아이조차도 이제는 두 가지 기준으로 책을 골라 든다. 하나는 분량이 적은 책, 다른 하나는 활자가 큰 책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책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에게 독서는 오직 책 한 권을 끝내고 다른 책을 집는 일이 되어 버렸다.(p.227)
- 인센티브는 늘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기준을 토대로 한다.(원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정성적 평가는 측정하기 어렵다) (p.229)
-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의 아이들에 대한 학업성취도 접근방식 차이 연구:
평가목표(performance goals)와 숙달목표(mastery goals)를 가진 아이들의 차이 실험.
평가목표를 가진 아이들은 자기 능력에 호의적인 평가를 듣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 이들은 시험을 잘 보고 싶어 했다. 주변에서 인정도 받고 싶고 상도 원했다. 반면 숙달목표를 지닌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일보다는 자기 능력을 ‘향상’하는 일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대상에 맞서고 싶어 했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으려 했다.(p.234)
- 인센티브는 왜 무딘 도구일까? 그 주된 이유는 대다수 직업이, 다른 사람들과 상당한 교감을 요구하는 모든 업무가 이른바 ‘불완전한 계약’형태로 조직되기 때문이다. 직무 중 일부는 구체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 의사들은 질병을 예방하고 진단하며 병을 고치고 고통을 덜어준다. 그렇지만 진찰과 치료를 정확히 어떤 식으로 하는지는 의사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p.237)
- 이스라엘 탁아소에서 생긴 일, 뒤늦게 아이를 데리러 오는 부모에게 물린 벌금효과.
25%에서 40%로, 벌금을 단지 가격으로 인식하며 경제적 사고로 바라보기 시작,
한번 오염된 인센티브는 복구 어려워, 벌금을 없애자 부모지각은 거의 두 배로 늘어, 이미 한 번 오염된 인센티브는 계속적으로 경제적 거래로 인식됨.(p.240~241)
- 스위스 시민을 상대로 한 ‘동네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에 관한 설문 실험(사회학자 브루노 프레이와 펠릭스 오베르홀저기) - 6주치의 봉급 수준 인센티브가 가미되자 시민의 도덕적 의무에서 단순한 경제적 판단으로 재구성되며 오히려 찬성률이 떨어짐.(유사실험, 퍼즐풀기와 5달러 지불 시 사람들이 느끼는 흥미, 오히려 돈을 받은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져)(p.243~245)
- 인센티브에 영향을 받는다고 모든 사람이 탈도덕화되는 것은 아니다. 옳다는 신념대로 행동하는 의사나 변호사, 교사도 일부 있을 것이고,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낳을 금전적 결과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p.247)
- 시간당 보수를 받는 변호사와 여러 전문직 종사자들이 점차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서, 친구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경험적 증거가 있다. 이들은 이렇게 묻기 시작한다. “이 일은 할 만 한 가치가 있나? 내가 시간당 보수를 포기할 정도로 가치가 있나?”(p.271)
- 시스템 개선자들은 규율과 인센티브도 자신들이 세운 제도에 일정부분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이러한 장치들은 초기의 가설 발판 혹은 마지막 방책에 불과하다고 본다. 따라서 처음부터 기댈 수단은 올바른 목표를 추구하는 제도와 올바르다는 이유 자체로 전문가들이 행동하게 유도하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다.(p.341)
-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삼고 일에서 만족을 느낄 때 재량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로 여기서 선순환이 발생한다. 우리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재량적 판단이 가능할 때 행복을 느낀다.(p.342)
- 몰입은 자기가 하는 활동에 빠져드는 경험이다. 그리고 의미 찾기는 자신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하는 것으로, 내 일이 다른 이의 삶을 향상시킨다고 느끼는 것이다. 셀리그먼은 진정한 행복은 몰입과 의미 찾기, 긍정적 감정의 조합이라고 말했다.(p.349)
- 일이 없다면 모든 인생은 부패한다. 그렇지만 일에 영혼이 없다면 인생은 질식사한다.(알베르 카뮈 인용, p.351)
- 좋은 친구, 좋은 부모, 좋은 동료, 좋은 지역사회 구성원이 되는 일, 그리고 좋은 교사, 좋은 의사, 좋은 변호사가 되는 일은 모두 남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천적 지혜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현명함을 키우려는 노력은 가치가 있다. 이런 이유로 재량권을 말살하고 지혜를 위협하는 규율과 인센티브에 저항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지혜를 몰아내는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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