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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관을 말하다

야구리그와 직업리그가 비슷한 이유

by 정도영 202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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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리그와 직업리그가 비슷한 이유

 

구단이 내 가치를 인정해줘서 고맙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바로 프로야구에서 FA 선수들이 수십억 이상의 성공적인 계약 후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럼 이런 이야기도 들어 보셨는지...

“2군은 (아직)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다”(모 프로야구 2군 전 감독의 말)

최저연봉 기준 자체를 더 올려야 한다. 프로선수들은 고용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 짧게는 12년 선수생활을 하고 은퇴하는 경우도 많다.”(전 사무총장을 지낸 변호사의 말 중에서)

프로야구 2군의 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들이다.

 

같은 운동을 하는데 뭔 놈의 격차가 이렇게 클까 싶지만, 아시다시피 자본주의 사회에선 거의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엔 1,2군만 있는 것도 아니다한 해 학교 졸업 야구선수 중 그나마 프로의 맛을 보는 것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들은 2군에조차 몸담을 수 없어 자기 돈을 내며 독립리그를 전전하거나 훨씬 많은 숫자가 리그 참여 자체를 포기하고 다른 생업을 찾아 떠나야 한다.

 

모든 시장에 존재하는 격차는 야구시장에서도 선명하게 존재한다

 

내가 하는 일이 그래서 그럴까? 가만히 보면 이런 격차가 만드는 야구 시장의 이미지는 직업시장의 전형적인 한 단면을 보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최소 1억 연봉은 넘어야 한다는 사람, 혹은 그래도 5~6천은 돼야 움직일 수 있다는 사람, 또 다른 이는 연봉 3천만 넘어도 행복하겠다는 사람. 어떻게든 최저임금은 지켜달라는 사람까지 그들의 사정은 천차만별이다.

 

그것이 운동이든, 일반적 직장생활이든 점점 자본주의는 가혹할 만큼 몸값에 관한 시장 내 위계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면 혹시 돈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정말 죽어라~’ 일해야 하는 환경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내가 만나 본 사람들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는 급여가 낮은 쪽이 훨씬 험한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결국 시장의 위계를 만드는 것은 노동의 강도라기보다는, 시장이 판단하는 생산성의 차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일부 금수저는 제외하고 ...

 

재미있게도 사람들은 한 리그에 속하면 그 리그의 모습만이 전부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머리로는 다른 리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 해도 내 삶의 관점은 철저히 자기가 속한 리그의 관점인 것이다.

원래 말 탄 사람은 말고삐 잡은 사람의 세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그 리그를 이탈해 하향 이동하게 되면 어떨까? 당연히 굉장한 충격에 빠진다. 경제적 충격은 물론이지만, 심지어 자신의 삶 자체를 의심하는 이도 생긴다.

 

그럼 계층 간 상향이동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이건 정말 쉽지 않은 문제다. 왜냐하면 모든 이들의 거의 공통적인 소망인데 자리는 형편없이 적기 때문이다.

다수가 원하는데 대상이 소수인 경우는 달리 방법이 없다. 평균 이상의 엄청난 수고를 들여야 한다.

혹자는 지금 노오오오력~’을 하라는 것인가 묻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맞다. ‘노오오오력~, 그것도 아주 스마아아아트~한 노오오오력이 필요하다.

 

누군들 자신만의 노력을 하지 않겠는가? 그 이상의 차이가 결국 '진짜 차이'를 만든다

 

아마 그런 기분이 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시장의 문제를 너무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는 것 아니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시장문제의 단기적 해결점이란 결국 단기적으로는 개인의 행동과 태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정부가, 사회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건 장기적 대안이고 시간이 걸린다.

길게, 함께 연대해 반드시 풀어가야 할 문제이지만 당장 우리의 고통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당장 우리의 삶을 그것에만 기댄다면 그건 마치 2군 신고선수가 훈련은 안 하고 연봉 시스템만 바꾸자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가 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큐 프로그램이나 강의에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해놓고 이제 국가와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게 없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을 때 문제의 논점을 슬쩍 미루어 흐리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게 해서 당장 삶이 바뀌는 경우를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욕심을 버리면 삶은 좀 안정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버릴 자신이 없다면, 큰 변화를 연대를 통해 함께 모색하되,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오래된 지혜라 대다수는 잊고 살지만 결국 세상의 변화는 늘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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