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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세상물정의 사회학_노명우 著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18.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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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 노명우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책을 말하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복잡하지만 그 사유 속을 온전히 유영할 수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사고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든다.

part의 주제에서 참고할 만한 유명 저작들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는 좋지만 의외로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이다. 아마도 학문이 높은 분들의 저작에서 흔히 나타나는 기반 지식이 있어야 읽기 편해지는부분 때문인 듯하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 하나는 나는 혹시 스스로 자기 하나쯤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더 나은 삶을 만들 수 있다는 명제 아래 사회에 대한 개선을 은폐해오지 않았는가?’란 질문이었다.

이렇게 질문을 만들어내는 책이 나는 좋다. 책의 본질적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 책의 곳곳에는 또한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이 넘친다. 책의 표현대로라면 준엄한 훈계처럼 들리는 양식良識과도 같은 생각들이다.

 

 

 

언론part에서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국가의 공익광고가, 기억part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재편에 대한 욕구가 떠올랐다. 예컨대 [벤야민(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저자)은 역사가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 또한 지배하게 하는 장치로 전락했음을 알고 있다(p.82)] 같은 부분이 그것이다.

 

자기계발서에 관한 부분 등에서 과도한 일반화(예컨대,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들은 모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뿐이다)가 일부 보이고, 책이 그리 친절하게 읽히지 않지만 오히려 그 덕분인지 각 부분 부분에 대해 나만의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든다. 요즘은 이런 책이 드물지 않은가.(어쩌면 오롯이 내 편협한 독서경향 탓일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나는 상식을 넘은 양식을 부드럽게 전달하고 싶은데 그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가?

나의 앎은 지식과 이해와 느낌의 결합일까?

부자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현대의 위인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등등의 고민을 많이 남겨 준 책이라 내용정리만 17 페이지를 넘어가 버렸다. 아마도 몇 번을 다시 읽어야 될 지도 모르겠다.

 

연관서적까지 읽고 싶지만....책이 먹고 사는 문제와도 연관된 사람인지라 그렇게 여유 있지 않고 또 그렇게 정진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다만, 언제고 몇 번씩 곱씹어보게 만들 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긴 재미는 쉽게 읽히지만, ‘통찰은 그리 쉽게 오는 것이 아니니 시간이 좀 걸릴 수밖에 없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 하나 더, 마무리까지 가도 좋은 삶을 위한 공격과 방어의 기술이란 내용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도 약간의 함정일 수 있겠다.

 

[세상을 개선하지 않으면 개인의 삶도 개선되기 어렵다]



마음에 남다>

 

-풍요는 좋은 삶을 누리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행복이다. 풍요로운 곳은 비싼 옷과 희귀한 음식이 넘쳐흐르는 곳이 아니라, 좋은 삶이 펼쳐지는 터전이다. 이전에 비해 비싼 옷을 입고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기름진 음식을 매끼 먹고 있지만, 풍요로운 삶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진다면, 어느새 우리는 좋은 삶에서 멀어진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p.16)


-‘부자 되기IMF 관리체제 이후 상식과도 같은 목표이다. 부자 되기는 소박하고 상식적인 희망이다. 하지만 소박하고 악의 없는 상식적 희망도 악마적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한 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개인은 소박한 꿈을 따를 뿐이지만, 부자 되기가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p.25~26)


-채워지지 않는 흉내 내기가 반복되면, 저 높은 곳에 있는 부자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이제 세상의 부자는 질투가 아니라 부러움을 전리품으로 챙기며 자본주의 전쟁에서 승리한 현대의 위인으로 등극한다(p.38)


-종교에서 인간의 구원이 신에게 달렸다면, 종교가 된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돈에 의해 구원된다는 차이만 있다.(중략) 세속화의 끝자락에서 자본주의는 종교의 마지막 남은 아우라마저 소멸시키고, 종교를 자신의 법칙 속으로 흡수한다.(중략) 하지만 자본주의는 종교를 집어삼켜 종교를 타락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왕성한 식욕으로 종교를 소화시킨 자본주의는 종교가 잡아먹힌 시대의 유일한 종교로 등극한다.(p.106~107)


-IMF 관리체제는 공식적으로 끝이 났지만, 1990년대에 학습하고 IMF 관리체제를 통해 복습한 부자 되기에 대한 물신적 집착이 유령처럼 한국을 지배하는 한 IMF 관리체제는 영원한 현재형이다(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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