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흐름으로 읽는 세계사/ 오무라 오지로 著
책을 말하다>
“돈을 믿습니까?”
언제부터인지 제대로 얘기하기조차 힘들지만 돈은 인간에게 한없이 중요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지난 번 읽었던 [세상물정의 사회학]의 ‘자본주의는 종교를 집어삼켜 종교를 타락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왕성한 식욕으로 종교를 소화시킨 자본주의는 종교가 잡아먹힌 시대의 유일한 종교로 등극한다’ 라는 문구처럼, 자본주의가 유일신처럼 변해가는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역사를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돈의 흐름으로 읽는다는 생각은 내게 ‘당연히 그럴 것 같은데...별로 읽어본 기억이 없는’ 주제였다.
돈이라는 프레임으로 역사를 읽는 느낌은 ‘암담함’ 그 자체다. 방송의 뉴스나 역사책은 어떤 식으로든 역사가의 의도, 혹은 시대적 배경에 의해 미화되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을 접하며 자라난 우리는 미국은 정의로운 국가, 일본이나 독일은 침략국, 영국은 신사의 나라, 그리고 아랍권은 테러나 전쟁이 빈번한 문제국가 같은 식으로 모호한 이미지만을 갖고 있기 일쑤다.
그런데 저자의 말마따나 돈의 흐름을 통해 역사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과정은 대단히 간결하고 명확해 보인다. 아마도 이 저자 역시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돈이 아닌 다른 문제’들을 배제하고 ‘돈의 관점으로 깔때기化’ 시킨 부분은 있을 것이나, 돈의 흐름으로 본 근대사는 나름 부정하기 힘든 명확한 설득력을 또한 제시하고 있다.
이거 빼고 저거 빼니, 아주 명확하게 모든 국가의 선택은 결국 어떤 명분을 달더라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움직인다’라는 극히 건조하지만 당연한 명제로 귀결된다. 거기에 우리는 얼마나 미화된 겉옷들을 입혀왔던 것일까?
어린 시절의 학습은 강력하다. 시간이 지난다고 어린 시절 우리가 구성했던 프레임이 그리 쉽게 무너지진 않는다. 그리고 성인 시절이라 해도 방송의 영향력이 강력하고, 그것이 전부 진실이라고 믿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역시 한번 구성한 프레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 여파는 ‘아직도 무의식중에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는 우려를 갖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과연 ‘돈의 흐름으로만 움직이는 세상’이 옳은 것일까? 모든 위장이 걸러지고 노골적인 이권의 흐름만 남는 세상이 온다 가정할 때, 지난 번 읽었던 [세상물정의 사회학]이 언급했던 한 부분이 떠오른다.
‘한 사회(혹은 세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혹은 국가)들이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추구한다고 생각해 보자. 개인은 소박한 꿈을 따를 뿐이지만, 부자 되기가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세상물정의 사회학_노명우 저] 중에서
결국 내 식의 결론은 이렇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마음속에 추구하고픈 하나의 이상쯤은 간직하고, 또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돈이 최고라는 흐름에 묻어간다면 아편전쟁 같은 후안무치한 전쟁들은 언제든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남다>
-영국은 어떻게 스페인을 능가하는 수준의 강국이 되었나?
간단히 말하자면 ‘거국적인 해적 행위’에 그 비결이 있다. 영국은 대항해시대에 뒤처진 후발주자였고 그 시대의 주역은 스페인, 포트투갈, 네덜란드였다.(중략) 그런 상황에서 영국 해적이 두각을 나타냈다. 우수한 조직력을 갖춘 선단과 뛰어난 항해술을 무기로 삼은 영국 해적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수송선을 잇달아 습격하여 재화와 보물, 귀중한 산품들을 강탈했다. 이 해적 선단을 눈여겨 본 영국 왕실은 왕실이 건조한 배를 해적들에게 선사하며 국가사업으로 해적 항해를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으뜸이었던 것이 해적 드레이크 Francis Drake의 항해다(p.15~16)
-서구 국가들의 경우 과학기술은 발달되어 있으나 그것을 활용하기 위한 자원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다는 애로 사항을 지니고 있었다. 당초 서구 국가들이 대항해시대 이후 전 세계에 진출한 동기 중 하나가 ‘자국에는 충분하지 않은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자국에 자원이 없으니 아프리카 대륙, 아메리카 대륙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미국은 차고 넘칠 만큼의 자원이 있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서양의 과학기술과 대륙의 풍요로움을 모두 갖고 있었던 셈이다. 강대국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p.34)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에 대량의 무기들을 팔아넘겼는데, 같은 연합국이면서도 무기 대금을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에 지불할 대금 마련을 위해 독일에 엄청난 액수의 배상금을 매겼다. 이 거액의 배상금 때문에 독일에서는 단기간에 물가가 급속도로 상승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며 독일 내 경제사회가 파탄 직전까지 내몰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독일 국민의 불만을 보듬고 헤아린다는 명목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히틀러 정권이다(p.39)
-(1차 세계대전 중) 고전 중인 영국은 유대인 사회에 엄청난 약속을 제시했다. 바로 전쟁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 지방에 (금융영역에서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의 지지를 얻기 위해) 유대인의 내셔널 홈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중략)
벨푸어 선언이라 불리는 이 약속은 당시 영국의 외무장관이었던 아서 벨푸어가 유대인 사회를 대표하는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인한다.(중략)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진영이 간신히 승리했지만 전후 중동은 당연하게도 혼란에 빠졌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방은 더없는 혼란 속에 놓였다. 아랍 세계와 유대인 사회의 대립이 싹튼 것이다. 영국의 삼중외교(아랍 각 부족의 독립 약속 vs 유대인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내셔널 홈 지원 약속)가 불러일으킨 결과였다(p.68~70)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 국가들도 미국과의 밀약(석유는 달러고 결제하고, 아랍의 국가는 미국이 지켜준다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이븐 사우드 사우디 아라비아 국왕의 밀약)을 견지해왔다. ‘석유는 달러로 거래한다’는 방침은 지금도 석유업계 전체의 암묵적인 양해처럼 존재하고 있으며 이 관습은 미국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었다(p.73~75)
-일본 경제는 전쟁 전에 급성장을 이루었으나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거듭나자 다른 경제 대국과의 알력이 발생하게 된다. 이 알력이 이윽고 경제 전쟁이라는 상황으로 발전했고, 급기야는 진짜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것이 태평양 전쟁이며 제2차 세계대전이었던 것이다. 최초의 경제 대립은 영국과의 섬유제품 경쟁(p.102~104)
-이란과 이라크의 국경 분쟁 시 미국이 후세인을 지원, 추후에는 이란에도 무기를 팔았음이 확인됨. 8년의 전쟁으로 100만 명이 죽었지만 이후의 중재를 통해 만들어진 국경은 이전 상태와 다를 것이 없었음
-중국은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내력이 완전히 달랐다.(중략) 중국은 소련이 획득한 지역이 아니었으며, 중국공산당이 독자적으로 정권을 세운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동유럽의 경우처럼 소련을 상대로 하는 복종 관계는 생겨나지 않았다(p.143)
-냉전이라 하면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세력이 우격다짐으로 다른 국가들을 꼼짝 못하게 억눌렀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면도 있다. 오히려 냉전 중 미국과 소련은 전 세계 국가들을 신경 써가며 경제적 지원을 했다. 물론 이는 양국의 경제를 악화시키기에 이르렀다(p.159)
-쌍둥이 적자(경상수지 적자+재정적자)라는 표현은 요즘 들어서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됐다. 왜냐하면 쌍둥이 적자는 미국 경제에서 완전히 일반적인 상태로 정착해버렸으며, 뉴스에서 언급되는 일조차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국은 이제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를 해결할 마음조차 먹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현재 미국의 대외 채무는 약 7조 5000억 달러(2016년 기준, 한국 돈 8천 조 정도)(p.182~183)
-미국 입장에서 이 걸프전만큼 경제적으로 효율이 좋은 전쟁은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냉전 중에 갖추어둔 무기를 그대로 쓰면 되고, 게다가 군비는 일본과 같은 동맹국이 지출하게끔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아랍 지역에서의 거대한 석유 이권까지 확보할 수 있다(p.194)
-앞뒤가 맞지 않는 이라크 전쟁도 경제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전쟁을 벌인 이유가 읽힌다.
2000년 11월, 후세인 대통령은 석유 거래 수단을 달러에서 유로로 변경했다. 이는 미국에 크나큰 타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의 석유 거래는 달러로 치르는 것이 암묵적인 룰로 자리 잡고 있었다.(중략) 미국 달러는 석유 거래를 도맡아 국제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다져왔다. 그러나 후세인 대통령은 이 암묵적인 룰을 깨고 유로 거래를 시작해 미국의 꼬리를 밟았던 것이다(p.198)
-미국의 달러라는 존재는 대단히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다. 미국 경제는 거액의 무역 적자를 끌어안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언제 파탄 나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달러 지폐를 찍어내기만 한다면 세계 각국이 사들인다. 그렇게 해서 미국 경제는 붕괴를 면해왔다. 따라서 미국은 달러가 지닌 기축통화의 지위를 절대로 지켜야만 했다.(중략)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후세인 정권이 붕괴하자 곧바로 이라크의 석유 거래 수단을 달러로 되돌렸다. 전쟁이란 대개 이권이 얽히기 마련이다. 순수하고도 도덕적인 대의만으로 치러지는 전쟁은 거의 없다. 이라크 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p.199)
-EU와 유로에는 커다란 약점이 몇 가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영국이 어정쩡한 형태로 가입했다는 점이다.(중략) 설상가상으로 2016년,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EU에서 이탈할 것을 결정했다. 영국은 EU 안에서 독일에 버금가는 경제 규모를 지니고 있는데 이런 영국이 이탈했다는 것은 EU로서는 커다란 타격임이 틀림없다(p.217~218)
-양국을 회사에 비유해본다면 미국은 매출로는 1위지만 이익이 전혀 나지 않아 적자가 누적되어 있는 회사고, 중국은 매출은 2위이나 이익은 1위로 흑자가 누적된 회사다(p.224)
-조세피난처에 강한 압력을 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국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조세피난처의 배후에는 영국이 있다’고 할 수 있다.(중략) 조세피난처를 최초로 조성한 국가는 영국이며 현재도 다수의 조세피난처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p.241)
-빈곤문제에 대처하는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옥스팜oxfam이 2016년 1월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62명에 불과한 전 세계 부자들이 소유한 부는 극빈층 36억 명분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 62명의 2015년도 자산은 1조 7600억 달러다. 이 액수가 전 세계 인구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이들의 부를 합한 것과 거의 같다는 뜻이다(p.253)
-애당초 미국이라는 국가는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성립되는 경제 대국이다. 달러가 기축통화라서 전 세계 국가들이 달러를 사들여주고, 미국은 별다른 수고 없이 세계의 부를 수중에 넣고 있다. 만일 미국 달러가 더는 기축통화가 아니게 된다면 미국은 한낱 빚더미 대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그렇게 될 경우 미국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대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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