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직업관을 말하다

너무나 일상적이라 낯선 존재, '직업'

by 정도영 2022. 8. 24.
반응형

오래 전에 내가 쓴 책들을 간간이 읽는다.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열의와 나름 고민한 흔적들이 느껴지는 글들이 있어 좋았다. 그런데 책이 절판되다보니 그대로 묻히는 것이 아쉬워 잠시 반추의 시간을 겸해 글을 올려본다.

이 책은 나의 두 번째 책, [내게 맞는 직업만들기]에서 일부 발췌한 글을 최근의 시류에 맞춰 일부 수정해 다시 올려본다.

 

너무나 일상적이라 낯선 존재, 직업

 

나는 직업을 생각할 때마다 이토록 사람의 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이렇게나 사람들의 무심함 속에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한다. 아마도 공기처럼, 혹은 소중한 가족처럼 너무 가까이 있으면 사람들이 무심해지는 경우이리라.

1365일 일을 하며, 그 속에 묻혀 생활하지만, 보다 큰 그림으로서 직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정작 우리들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이 직업이 내게 최소한의 경제적 보상을 주는가?'

'이 직업이 무슨 이유로 내게 만족감을 주는가?'

'선택한 직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내가 살아가며 추구하려는 가치와 이 직업의 궁합은 어느 정도나 맞는가?'

 

그러나 실제 직업의 선택에 있어서 첫 번째 요인 외에는 고려대상이 되기 쉽지 않다. 어느 정도 감안을 할지라도 그것은 무의식적인 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이 부분을 진지하게 고려하려면 나름의 노력과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미 경력자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더 다양하게 직업을 선택하기가 어렵다.
이미 기존경력으로 인해, 부양할 가족으로 인해 ‘선택의 자유’라는 것이 상당히 제한받기 때문이다.

 

직업이란 존재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과거엔 분명 흔치 않았다. 우리 시대의 직업이란 그냥 고르는 것, 주어지는 것이었지 무언가 분석하고 확인하고 삶의 가치와 연동하는 것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르다.

 

각자의 다양한 삶에는 그만의 직업이력이 함께 한다

 

어떤 한 남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고등학교를 별 생각없이 나왔고, 대학 역시 어중간한 성적에 맞춰 학교 선생님의 추천과 부모님의 바램, 그리고 자신의 적당한 욕구를 섞어 조절해 선택을 한다. 그나마 자신의 욕구가 조금이라도 반영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더 문제는 자신의 욕구란 것도 깊은 고민과 탐색활동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닌 피상적인 이미지만 갖고 만들어진 경우다. 면접현장에서 마케터란 것이 무엇인지 자신만의 정의도 갖지 못한 채 마케팅 파트를 지원하는 청춘들을 보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점수에 맞춰 선택된 전공이 제대로 자신의 본질과 부합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거기에 암묵적인 대학의 서열화는 개별 학생들의 그나마 단단하지 않은 의욕을 사정없이 꺾어 놓기도 한다.

학교생활을 통해서도 어떤 직업을 가지면 삶이 좀 폼 나더라는 테마에 기반한 스펙 쌓기만 진행된다. 학교에 대한 사회적 인정에 굴복하면 결국 다시 편입을 고민하기도 하고, 때로 차라리 공무원이나 되자는 식의 적성고민과는 다른 엉뚱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정작 대학생활을 마감할 무렵이면 얼마나 더 큰 회사, 더 좋은 급여와 복리후생이 있는 회사에 들어가느냐는 분위기만 강조된다.

 

제대로 된 준비, 출발을 위한 기초가 부실하니 운 좋게 들어간다 해도 그렇게 선택한 직업이 오래 갈 리 없다. 얼마 가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대표적인 논리가 회사에 비전이 없다인데 흔히 이런 경우 그 비전을 물어보면 정작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비전을 갖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20대의 후반과 30대의 초반을 애매하게 보내다 보면 제대로 된 경력형성이 되기 어렵다. 출발이 조금만 삐끗해도 사정없이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한국사회다.

오늘의 현실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낄 때쯤엔
이미 한번 꼬여진 경력은 점점 더 풀기 어려워져 간다.

 

그럭저럭 40대를 지날 때까지도 부모의 넉넉한 원조가 없다면 늘 생활에 쫓겨야 하고, 그나마 다니는 회사도 스스로에겐 불만투성이의 애매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불만투성이 회사에서마저 갑작스레 비자발적인 퇴직의 역풍을 맞으면 40대라는 이른 나이임에도 자신의 주요 경력에서 이탈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때부터 개인은 사실상 홀로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자 꽤 긴 이야기를 했다. 이 남자는 보통의 사람들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성공만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TV에 나오는 것은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성공한 소수의 결과만 보여준다. 평범한 80~90%의 소시민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님을 이해하지만, 엄연히 그런 다수 대중이 우리 시대의 보통 얼굴임을 잊어선 곤란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내 삶이 이렇게 되었나를 고민하는 것이 인기는 없을지 몰라도 우리 시대 다수의 현실을 꿰뚫는 고민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사람이란 원래가 모순덩어리다. 그 모순 중의 하나는 그토록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직업분야에서 터무니없이 무심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어쩔 수 없는선택이었음을 얘기한다.

하지만 직업현장을 매일 살아가는 내게는 잘 몰랐던선택으로 보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는것과  어쩔 수 없는것 사이에는 큰 괴리가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직업에 대해 너무 무심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에야 "몰랐다"며 자신을 자책한다.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