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는 고슴도치가 산다?
직장생활의 이모저모 들여다보기
[고슴도치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온기를 느끼기 위해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들의 가시가 상대를 찔러 결국은 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추위 때문에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못한 채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남긴 유명한 고슴도치의 우화다. 인간을 이토록 간결히 잘 묘사할 수 있을까 싶어 기억에 남았던 얘기다.
작은 공공 쪽의 기관에서 일을 하는 한 여성을 알고 있다. 흔히 기간제라 불리는 일자리에서 일을 하는 그녀는 늘 회사에서 인간관계로 고민이 많다.
여성, 그것도 40대 이상의 여성이 유난히 많은 조직의 특성 상 ‘말’들이 꽤 다양한 잡음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물색없이 서로 상사나 동료를 비방했는데 이게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단다. 결국 이런 앙금들이 쌓이고, 때로 모른 척 때로 서로 비방하며 아웅다웅 하는 게 일상이라고 하니, 정작 일보다 피곤한 직장상황의 전형인 셈이다.
"직장생활이란 게 결국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나는 관계"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직장 내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일을 하고, 성과를 내고, 때로 회사에서 밀려 나기도 한다.
어느 책에선가 ‘조직 내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유능한 자가 아니라 잘 맞는 사람’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결국 많은 부분, 역량보다 관계가 직장생활을 좌우한다는 얘기다.
관계를 잘 하는 비결을 다른 말로 바꾸면 ‘적절한 (관계의) 간격 잡기’가 아닐까 싶다. 날카로운 가시에도 불구하고 좀 더 가까이 가야할 존재, 혹은 별로 위협이 되지 않더라도 아예 멀리 떨어지는 것이 이로운 존재, 그러면서도 누구에겐가 대놓고 등을 지지 않는 노련함까지....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직장에도 정치가 있다는 건 알 만 한 사람들은 다 안다. 어느 순간 일정 직급이 되면 본의 아니게라도 라인이 정해진다. 이게 없다면 어쩌면 ‘어느 정도의’ 직급까지 아예 가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 뿐이면 좋으련만 이러한 관계의 역학은 또 수시로 변한다. 누군가 들고 나면 그에 따라 또 다른 요동이 온다. 마치 고슴도치의 관계처럼 멀리 하기도 가까이 하기도 어려운 존재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가깝지도 않게, 멀지도 않게)’이라는 말은 의외로 무궁한 지혜가 담긴 말인 셈이다.
어찌됐건...이렇게 관계는 입사와 승진,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퇴사 후까지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똑같이 20년 가까이 근무해 온 직장에서 갑작스런 구조조정으로 밀리게 된 40대의 부장이 둘 있다고 하자. 둘 모두 이런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중 A는 자신이 따르던 임원의 행동이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충실히 밑을 바쳐줬건만 이렇게 ‘자신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는 생각에 퇴직 시까지 그 임원과 인사는커녕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에 비해 B는 똑같은 상황에서 역시나 화가 났지만 그 임원을 찾아가 물었다.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제가 이걸 따라야만 하는 건가요?” 임원의 대답은 “그렇다”였고, 그는 군소리 없이 “그동안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며 인사를 드리고 잘 마무리를 짓고 나왔다.
자, 이제 두 사람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그들이 영원히 직장에서 이탈할 것이 아니란 것이다. 또한 그들은 웬만하면 자신들이 일했던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할 것이란 사실이다.
A와 B는 다수의 재취업 진행과정에서 과거의 흔적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평판조회라는 이름으로 접촉이 있을 것이며, 심지어 자신이 면접을 본 중소기업의 대표가 이전 직장의 상사와 골프를 치는 사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과정 속에 가뿐하게 재취업에 성공한 케이스를 만난 적이 있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직장에는 고슴도치들이 산다. 우리는 늘 서로간의 간격을 고민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는 꼭 기억하자.
‘친구는 못 만들지라도 원수는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인연의 질김은 참 극적인 순간에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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