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공공기관에 다니시던 분들이 퇴직을 한 후 나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50대에 이미 접어 든 이런 분들이 재취업 관련 기관을 찾아오실 때의 통상적인 반응은 두 종류다.
첫 번째는 ‘내가 이만한 경력이 있으니 나를 저만한 곳으로 보내주시오’라는 것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경운데 문제는 지나온 경력에 준하는 조건만을 보시겠다는 얘기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거 아니면 안 된다’를 고집하는 분들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분들이 각론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의 가능성을 점검해 볼 때는 막상 스스로 ‘그건 안 될 거다’라며 그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차단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나친 현실인식파다. ‘내가 좀 알아봤는데 정말 어렵더라’는 반응을 넘어 ‘도대체 뭐가 될 만 한 게 있겠느냐’는 반응이다. 앞서 언급한 분들과는 반대로 이 분들은 속으로는 은근히 기대를 하면서도 밖으로 보이는 행동은 또 냉소적이다. 재취업 관련기관을 방문하셔서도 ‘여기서 뭘 해줄 수 있겠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 두 유형의 분들이 서로 자신들이 가진 자신감과 현실인식을 조금씩 나눠가졌으면 정말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균형을 가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침 당시 상담을 진행했던 두 분은 후자 쪽에 가까운 분들이었다.
“이런 데 등록하고 활동을 해봐야 재취업이 되겠습니까?”란 비교적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하셨다. 그래서 난 솔직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해봐야 압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떻게 하시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 이런 질문이 제일 난감하다. 이건 마치 처음 맞선을 보러 가는 사람이 주선자에게 상대방과 결혼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생님들 정도 연령대의 경우, 재취업은 상황적인 변수가 많습니다. 아마도 재취업은 본인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당연히 되시겠지만 그 일자리의 만족도는 현재로선 예측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이런 곳을 활용할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대놓고 묻는다. 적어도 솔직한 분들이긴 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일단 선생님들이 혼자 진행하시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줍니다. 둘째는, 이게 보다 중요할 수도 있을 텐데...아직 두 분께서는 퇴직 이후를 어떻게 살겠다는 밑그림을 가지고 있지 않으실 겁니다. 그 부분을 만드실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 퇴직은 누구나 한다. 회사든 군대든, 공무원이든. 문제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퇴직 이후에 대해 제대로 된 방향성 하나 없이 현실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배를 바다로 띄우는데 어디로 가야 한다는 지표도 없이 그냥 망망대해로 나가 아무 육지나 찾는 격이다. 눈에 띄는 육지에 그 배가 가고 싶어 할지는 차후의 문제로 남겨 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실적인 분들이 많다. 굉장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현실적인 감이 뛰어난 사람들. MBTI란 성격유형 검사에서는 이쪽 분들을 묶어 ‘감각형’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군대 역시 그런 분들이 역량을 더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밝고 어두운 면이 공존하듯, 이런 분들은 흔히 장기적인 큰 그림을 그리는 것에 약점이 있다. 잠깐의 재취업이 아닌 퇴직 후의 30년 혹은 40여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큰 그림말이다.
가장 좋은 것은 퇴직 전에 ‘어떻게 앞으로의 인생을 살고 싶은가’란 문제에 답을 만드는 것이다. 군은 일반 회사와 달리 예편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미리 주는 편으로 알고 있다.(일반 회사의 경우는 26년 재직자를 일주일 만에 통보하고 명예퇴직 시키는 경우도 봤다)
그렇다면 그 부분을 최대한 활용해 미래에 대한 큰 그림부터 그려야 한다. 최종 기착지가 정해지고 현재의 내 위치를 확인하면 중간에 밟아야 할 곳들은 당연히 따라 나오게 되어 있다. 방향이 정해지면 단순히 방법의 문제만 남게 되므로 문제의 해결이 좀 더 용이해짐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큰 그림을 그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좀 심한 경우는 자신이 익숙하지 못하다고 필요 없는 것,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치부해 버린다.
우리에게는 앞으로도 수많은 변화가 닥쳐 올 것이고, 그만큼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떤 항로도 잡혀있지 않다면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을 할 것인가? 몽테뉴의 말처럼 ‘어디로 배를 저어갈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닌’ 상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방황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지만, 나이 들어 하는 방황은 더 무섭다.
이제부터라도 삶의 항로를 그리자. 당장의 취업이 중요치 않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매번 어찌어찌 취업을 하지만, 금방 또 같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어떡하지?’란 말을 되물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얘기다.
내가 가려는 길이 정해져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가려는 의지 역시 강해진다. 눈에 보이는 목표가 없으니 매번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의연하게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 길을 매진해 갈 수 있을 때, 단순히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삶의 활력까지 생겨날 수 있다.
아! 좀 전에 상담을 진행했던 두 분의 얘기를 하다 말았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그 두 분은 그날 바로 기관에 등록 후 열심히 자신들의 길을 찾고 있다. 재취업기관은 꼭 당장의 일자리 문제만 논의하는 곳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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