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혼자서 버틸 것인가, 함께 해결할 것인가)
여러분은 운동을 좋아하시나요? 전 사실 운동을 좋아했었지만 지금은 잘 하지 못합니다. 다친 곳도 좀 있고, 언제부턴가 일에 쫓기다보니 운동은 조금씩 뒷전으로 밀렸지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구요? 눈물 나게 고생 중입니다. 모든 선택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지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이번에 모 은행에서 전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파업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실제로 너무 많은 유휴인력을 안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면 자신들에게는 절박한 문제가 이렇게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조차 너무 많이 듣는 단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니 이것은 이미 진행형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하기는 하지만 정작 내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런 식의 추론에 너무 약합니다.
이미 대형마트에는 셀프 계산대가 놓여 있습니다. 혹여 마트 등에서 캐셔로 일하고 있는 분이라면 이런 추세에 대비해 자신의 직업적 미래를 구상해야 합니다. 무인 계산대가 일반화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어쩌면 무인 계산대 역시 금방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바코드를 무선인식으로 읽어내는 기술은 계산대란 개념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한정된 사람들만의 얘기가 아니지요.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앞서가는 기술의 변화에 영향을 받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그리고 너무도 광범위한 파급력으로 기술은 인간의 일자리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 고지서를 얼마전에 받았습니다. 이제 또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겠지요. 개인의 힘만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도출해 낼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술도 인간의 일자리를 더 늘리는 쪽으로는 작용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기업은 사회적 가치도 도출해야 하지만 그 이전에 이윤창출에 집중하는 것이 속성입니다. 어떤 기술이 인건비를 올려야 한다면 기업에게 그것이 매력적인 영역일까요? 이미 ‘인간의 역할을 줄이는 기술’은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개인들은 적어도 자신들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물론이고, 일어날 변화까지 예측하며(그게 안 되면 최소한의 대안이라도 염두에 두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상황입니다. 어찌 보면 그 속도감에 피로가 몰려옵니다.
미래를 살피고 대비해야 하는 것은 개인의 몫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것만으로는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명확해 보입니다. 이쯤 되면 제도의 힘, 연대의 힘을 통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 필요해 지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것이 기본 소득제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기본 소득제는 어떤 조건도 없이(영어식 표현 중의 하나가 unconditional basic income이네요)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기계에 의해 일자리를 점점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더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일정소득을 지원해 주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입니다.
이미 핀란드에서는 2017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월 560유로(72만원)를 장기실업자 2천 명에게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아직 정리 중인 상태라고 하네요.
돈을 무상으로 푼다는 것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음악도, 글도 AI에 의해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진 상황에서는 인간 일자리의 증발을 피할 길은 없어 보입니다.
결국 그 상태를 계속 놓아두면 기계를 독점한 자본가들만 살아남는 세상이 되겠지요.
그 전에 기계화로 인한 혜택을 개인들에게도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돌려놓아야 합니다. 어쩌면 기본소득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기술의 발전을 통해 누리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이상의 구현장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자본주의의 흐름은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결국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던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 일자리를 잃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1년 정도 가장의 일이 없어도 살아갈 만큼 돈을 모아 둔 집이 몇이나 될까요?
모든 사람에게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낼 기업가적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누군가’는 세상에 뒤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또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는 잠재적 후보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많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각자도생만을 부르짖어야 할까요? 외면 받는 개인이 많아질 때 그 사회는 이미 안전하지 않습니다. 지금 시대야말로 좀 더 거시적인 방향 아래서 사회적 발전에 대한 안전장치를 논의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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