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히로인을 보고 싶다
TV를 보면 참 징그럽게도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이것 빼고 저것 빼서 간단히 골자만 말하면, ‘예쁘고 착한 여주인공이 멋진 남자(대체로 재벌2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 잘 먹고 잘 산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이러한 골자에서 비틀고 변주를 한 것에 불과하다. 예전의 전원일기(참 얘기하고 보니 전설의 드라마다)같은 드라마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나마 최근에 방영된 응답하라 시리즈(사실 이것도 재벌2세는 없는데 주인공들이 너무 럭셔리 하다. 가족애는 있는데 시대의 아픔은 안 보인다)같은 것이 조금은 요즘 추세에서 예외일 정도다.
적어도 지금 TV드라마는 마취 효과는 있을지언정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조각 같은 선남선녀도 모자라 금수저 배경까지 이야기가 흘러가면, 그냥 현실에 없는 동화 속 얘기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TV 드라마 속엔 어떤 시대적 고민도 잘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그런 아픔을 잠시라도 잊으려고 TV 앞에 모여드는 건데 어쩌면 내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빈부격차, 능력격차 외에도 은근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나도 남자지만 참 이 나라의 TV는 남성 지향적이다. 여성은 많은 경우 신데렐라 역할에 그친다. 좀 나가봐야 캔디 수준이다. 왜 능력의 주체가 여성이 되면 안 될까? 거기에도 남성위주의 확률이 반영된 걸까? 그토록 넘치는 신데렐라에 왜 남자는 없는 걸까?
(이 아이들은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나기를 바란다)
어린 초등생 딸아이가 TV 드라마를 곁에서 훔쳐본다. 아내는 간혹 남편에 대한 아쉬움 탓인지 한술 더 떠 ‘돈 많은 남자’의 장점을 농인지 진담인지 알기 힘들게 내뱉는다. TV 속 그녀들은 대다수가 선택을 당하는 입장이다. 나는 딸에게서 ‘돈 많은 남자한테 시집가겠다’는 말이 나올까 두렵다. 차라리 ‘돈 많이 벌어서 내가 원하는 남자 고르겠다’나 ‘좋은 사람 만나서 함께 잘 살면 되지’라는 말이 듣고 싶다.
신데렐라 신드롬은 사회의 갈증이 심할수록 더 유행을 타는 것 같다. 거기엔 건강한 삶의 주체로서의 여성이 결여되어 있다. 차라리 한번쯤은 남자 신데렐라도 보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억지를 써서라도 성공에 대한 남녀의 균형을 맞춰보고 싶다. 딸을 가진 아빠로서 참 보여주고 싶지 않은 TV속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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