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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영의 뷰포인트

엄마를 부르다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1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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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엄마~~엄마아~~”

 

처연한 울음소리가 온 공간을 휘젓고 있었다. 검은 소복을 입은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30대 언저리의 그 모습에서 내가 본 건 유원지에서 엄마를 잃고 미처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 우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랬다. 그렇게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친구 역시 그날 모친을 잃었다. 오래도록 앓다가 돌아가셨으니 무조건 나쁜 것이라 얘기하기도 어렵지만, 누군가, 특히 자신의 어머니를 잃는다는 건 분명히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나도 나이가 40대를 훌쩍 넘겼는데, 여전히 누군가를 부르며 울고 싶은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어린 시절 엄마를 애타게 부르던 기억이 한번 쯤 있을 것이다.


공포영화였지만 ‘사일렌트 힐’이란 영화에서 가장 잊지 못하는 대사가 있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하느님이다’ 대강 이런 의미의 대사였던 것 같다. 그렇다. 우리에겐 아직 어린 시절의 내가 내 속 어딘가에 남아 있고, 그래서 여전히 늙고 병드신 어머니조차 그 영역은 절대적이다.

그녀를 잃는 순간 마음 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아이가 튀어나와 마구 울부짖는 것이리라. 왠지 그 아픔이 남의 일만 같지 않다. 그래서였으리라. 나도 몰래 처음 보는 여자의 “엄마”란 소리에 슬쩍 눈물을 훔친 것은....

 

문득 고향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응, 너는 출근했니?”라는 첫 마디에 다시 목이 메인다. 방랑 끼 많은 아들에 대한 첫 마디는 늘 그랬다. 걱정이 많으실까 해 그냥 “네”라고 대답했다. 언제부턴가 말뿐이지만 어머니와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게 됐다. 아주 어린 시절에도 별로 써보지 않은 말이건만....이제라도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별로 하는 게 없다. 늘 나이가 들어가며 깨닫는 건 사랑은 ‘원사이드한 내리사랑’이란 것이다. 나는 이 나이에도 여전히 그녀에게 걱정거리일 뿐이다. 인간은 늘 후회할 거리를 만들며 산다.

 




멍하니 가을 하늘을 바라보다 벤치에 앉아 잠시 미안한 마음에 얼굴을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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