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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관을 말하다

그냥 흐르는 시간은 없다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14.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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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후배의 돌잔치에서

 

 

 


 

 

 

며칠 전 후배의 아기 돌잔치에 초대를 받아 갔다.

오랜 기간 연극을 했던 후배는 뒤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40이 훌쩍 넘어 어린 딸을 낳았다.

연극을 하는 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 역시 험하고 어려운 길을 용케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다. 장사와 연극, 그리고 드라마 단역 출연을 병행하던 그는 아직도 대부분 단역이긴 하지만 이제 내년부터는 정식기획사를 통해 일을 할 정도로 성장을 했다.


 

 

 

뒤늦은 아기의 탄생과 돌을 축하하던 자리에서 갑자기 후배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서 결정을 못하고 있을 때 “이때까지 한 것이 있는데 버리지 말고 한번만 더 미친 척 하고 세상에 부딪혀 보는 게 어떨까?”라며 자신에게 길을 제시해준 것이 나였다는 얘기를 했다.

실상 그런 고민을 하며 술잔을 기울인 기억이 있다. 그때 썩 가능성이 높지 않은 다른 것보다는 자신이 잘 알고 재미있어 하는 영역에서 좀 더 확장하고 넓혀봤으면, 그래서 평생에 후회는 남기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세세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후배가 아내에게도 같은 말을 하며 너무 고마워하는 모습에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 이후 크게 신경을 써주지 못한 탓이다.



 



후배가 갑자기 물었다. "형, 내 카톡 대문에 있는 말 봤어요?"

그걸 외울리는 없다. 다만, 카톡으로 보낸 돌잔치 초대를 보는데 눈에 띄는 문구라 기억은 났다. '그냥 가는 시간은 없으리'라는 글이었는데 후배의 스타일은 아니라 의아했었다.

"그거 형이 해준 말이잖아요. 어떤 시간이든 그냥 흘러가는 것은 없다고.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서 아예 올려놓은 거잖아요."

아마도 내가 했다면 그런 의미였으리라. 그동안 노력해서 만든 시간이 있는데 그것들이 의미없이 지나기야 했겠느냐. 그래도 지금 가장 네가 가진 단단한 경쟁력이 아니겠냐는...

내가 10년전쯤에 했던 말 한마디를 누군가의 기억을 통해 듣는 것은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돌잔치를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낯선 사람 하나가 손을 덥석 손을 잡았다. 누군지 기억에 익은 듯도 해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정도영씨 저를 모르시겠냐?”고 묻는다.

뒤늦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야 알았다. 바로 그 후배의 형님이었다.

그 형님 역시 오랜 기간 헤매던 후배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어서 형으로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러니 마음은 더 짠한데 그만큼 더 민망하다. 내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을까 싶다. 결과야 저 후배가 잘해서 낸 것인데...

 

 

 


이래저래 감사한 마음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곱씹어 본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실은 아마도 그 후배의 연극에, 영화에 대한 열정이 길을 못 찾고 둑 안에 갇힌 물처럼 넘치기 일보직전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평소에 비교적 신뢰가 있던 편인 선배가 한 말이 아주 작은 틈새를 만들어줬을 것이고, 어쩌면 (후배가) 기다렸던 그 조언에 스스로 험한 길에 다시 들어섰을 것이다. 그 이후는 이미 말한 것처럼 자신의 열정과 노력만으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컨설턴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때 정말 컨설턴트는 그 사람 이상의 무력감이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반면에 예상치 않은 곳에서 자신의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도와줬다며 감사해 하는 사람을 뜬금없이 만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마치 아무 생각 없이 뿌린 작은 씨앗이 큰 열매로 돌아오는 듯 해 마음이 짠하다.


어쩌면 삶을 바꾸는 것은 훌륭한 조언이 아닌지도 모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듣는 사람의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차고 넘치는 가슴 속의 열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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